[전남인터넷신문]농협전남본부는 지난 9일 전라남도와 함께 친환경농자재 지역제품 우선 구매 활성화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단순한 행정적 협조 이상의 깊은 함의를 지닌다. 이는 그동안 외부 의존형 구조에 머물렀던 전남농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지역 내에서 부가가치가 선순환하는 ‘후방산업 육성’의 실질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지역 경제의 실질적 자립과 지속 가능한 농업 기반 마련을 위한 이 결단에 뜨거운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오늘날 전남농업이 직면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전라남도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의 농산물 생산기지로서 그 위상을 공고히 해왔으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생산량 지표 이면에는 뼈아픈 진실이 숨어 있다.
과거와 달리 농업 생산 비용 중 외부로 유출되는 금액의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농사가 하늘과 땅, 그리고 농부의 노동력이 중심이었다면, 현대 농업은 철저하게 자본과 기술이 집약된 산업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핵심 요소인 종자, 비료, 농약, 각종 시설 자재, 그리고 첨단 농기계 등의 상당수를 지역 외부에서 구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를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전남농업은 농산물의 진정한 ‘산지’라기보다 점점 농산물의 ‘조립공장’처럼 변질되어 가고 있다. 땅이라는 생산 공간과 장소만 전남에 있을 뿐, 핵심적인 생산 수단은 모두 외지에서 들여와 전남의 노동력을 빌려 생산만 하고, 그에 따른 소액의 ‘조립 비용’만 챙기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남에서 애써 농사를 지어 농산물을 대량으로 판매해도, 정작 지역 경제에 머물며 선순환되는 자금의 비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생산의 열매는 맺히되 그 과즙은 외부로 흘러 나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농업의 전방산업과 후방산업을 전남 현지에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농업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단순히 생산에만 국한하지 말고, 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공급하는 후방산업과 생산된 농산물을 가공·유통하는 전방산업을 지역 내에 뿌리 내리게 하여 산업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만 돈이 돌고 사람이 머무는 활력 넘치는 전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농협전남본부와 전라남도의 협약은 전남농업 후방산업 육성의 마중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농자재를 지역 농협이 우선적으로 구매해 주는 선제적 조치는 도내 자재 기업들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고, 이는 곧 기술 투자와 고용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지역 농업이 지역의 산업을 키우고, 그 산업이 다시 농업의 기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건강한 공생 관계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친환경농자재를 넘어 더 넓은 지평을 바라보아야 한다. 전라남도의 농업 정책은 앞으로 농업 후방과 전방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적극적인 육성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스마트팜 설비나 ICT 기반의 첨단 농업 솔루션 등 전남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발판 삼아 지역 기업들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전남의 들녘을 이들 기업의 테스트베드로 제공하고, 여기서 검증된 기술이 전국과 세계로 뻗어 나갈 때 전남농업은 비로소 ‘조립공장’의 낡은 외투를 벗어던질 수 있다. 결국 농업의 지속 가능성은 산업적 자생력에서 나온다. 지역에서 생산한 자재가 지역 농지에 뿌려지고, 그 땅에서 자란 농산물이 지역의 전방산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재탄생하는 자립형 농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협약이 일회성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전남농업이 대한민국 농산업의 메카로 거듭나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농민의 땀방울이 온전히 지역의 번영으로 이어지는 그날, 전남 농업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풍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라남도, 스마트팜 공급지로 육성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5-06-20).
허북구. 2022. 전남농업 후방산업 육성해 시너지효과 내야.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 농업칼럼(2022-06-09).
허북구. 2020. 전남도, 스마트팜 R&D와 장비업체 집적화 선점해야. 전남인터넷신문 칼럼(202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