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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브랜드쌀, 광저우 박람회보다 지역 식당이 먼저다 - 농업 칼럼니스트 농학박사 허북구
  • 기사등록 2025-05-29 09: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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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전라남도가 2025년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쌀’을 발표했다. 해남 ‘땅끝햇살’이 대상을 수상했고, 장흥 ‘아르미쌀’, 영암 ‘달마지쌀’, 영광 ‘사계절이 사는 집’, 나주 ‘왕건이 탐낸 쌀’ 등이 뒤를 이었다. 무안 ‘황토랑쌀’, 순천 ‘나누우리’, 강진 ‘프리미엄호평’, 함평 ‘우렁색시미’, 진도 ‘보배진미쌀’도 장려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남도는 식미평가, 외관 품위, 품종 혼입 여부, 기계적 품질, 안전성 등 여러 항목에 대해 한국식품연구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등 전문기관의 분석을 거쳐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절차를 보면 브랜드쌀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진다. 전문가의 평가를 거쳤고, 안전성까지 확보된 쌀이라는 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더불어 도에서는 선정된 브랜드쌀에 대해 마케팅 및 품질 향상 사업비로 총 1억5천만 원을 차등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지역 쌀의 인지도 향상과 시장 확대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체계적으로 선정된 브랜드쌀이 정작 소비자 식탁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현실은 뼈아프다. 매년 10대 브랜드쌀을 뽑는 이유가 좋은 쌀의 생산, 소비를 늘리고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함이라면, 그 최종 지점은 결국 일반 소비자의 식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는 소비자와 브랜드쌀 사이에 너무 많은 거리감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 브랜드쌀이 어디서 팔리는지 알지 못하며, 각기 다른 브랜드쌀을 구매해서 비교해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욱이 쌀은 단순히 밥을 짓는 데 쓰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식의 종류와 용도에 따라 어울리는 특성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나주의 대표 음식인 곰탕은 밥이 국물에 말아져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쌀의 퍼짐성이나 조직감에 따라 국물 맛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미묘한 차이는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판단하기 어렵다.

 

또한 쌀을 분말로 가공하여 떡, 빵, 국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경우도 각각 적합한 특성이 다르다. 그러나 현재 브랜드쌀 선정 기준은 대부분 ‘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쌀 소비의 전통적 용도를 고려한 당연한 기준일 수 있지만, 다양화된 소비 행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선정된 쌀을 일반 소비자가 실제로 접해보고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주의 ‘왕건이 탐낸 쌀’은 지역 농협이나 일부 매장에서 판매되지만, 외지인이 나주에 방문해 해당 쌀로 지은 밥을 식당에서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 식당과 브랜드쌀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들은 단가와 공급 안정성 등을 이유로 브랜드쌀보다 일반 유통 쌀을 사용하기 쉽고, 브랜드쌀 자체도 홍보와 유통 경로가 부족하다 보니 ‘먹어보고 구매한다’는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전남도는 오는 6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리는 ‘광저우 국제 우수 쌀 및 브랜드 곡물 박람회(IRE China 2025)’에 참가해 전남 쌀의 해외 수출을 추진할 예정이다. 바이어와의 수출 상담회, 전남쌀 홍보관 운영 등을 통해 브랜드쌀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IRE China 2025가 열리는 광저우를 포함해 주요 참가국인 중국, 베트남, 인도, 태국, 파키스탄 등 대부분은 자포니카가 아닌 인디카 쌀을 주로 소비하는 국가들이다. FAO 통계에 따르면 세계 쌀 소비량의 약 75-80%는 인디카, 15-20%가 자포니카이며, 나머지는 자바니카 등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자포니카 쌀은 이들 국가의 주류 시장과는 기본적인 수요 구조부터 맞지 않는다.

 

IRE China 2025에서 전시되는 것 또한 쌀 가공품, 잡곡류, 가공 및 저장 설비, 검사 및 포장 장비로 박람회 개최 취지와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쌀’과는 거리감이 다소 있다. 물론 박람회는 교류의 장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출 확대나 브랜드 정착이라는 목표로 보기에는 전략적 타당성이 부족하다. 인디카 시장에서 자포니카 쌀을 선보이기보다는, 자포니카를 소비하는 국가나 프리미엄 수입쌀 시장을 노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수출 전략일 수 있다.

 

전남도는 이제 ‘선정’에만 만족하지 말고, 이 브랜드쌀이 지역에서부터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지역 내 유명 식당이나 음식 거리, 숙박업소와 협력해 브랜드쌀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 식당에서는 영암 달마지쌀로 밥을 짓습니다’ 같은 표시가 있으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쌀의 브랜드를 인식하게 된다. 또 쌀 시식 행사, 쌀 요리 경연대회, 밥상 체험형 관광상품 등 다양한 체험형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

 

해외 수출 역시 국내 기준만으로 브랜드를 선정해 일괄적으로 홍보하는 방식보다는, 수출 대상 국가의 식문화, 기호, 조리방식에 맞춘 맞춤형 쌀을 개발·선정하여 접근해야 한다. 전남쌀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필요’에 맞는 전략이 선행되어야 한다.

 

쌀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쌀을 통해 지역의 기후와 토양, 농민의 정성과 전통이 녹아든 문화를 소비자에게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남의 브랜드쌀’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타이틀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식탁에서, 식당에서, 마켓에서 살아 숨쉬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전라남도의 진정한 고품질 브랜드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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