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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이대로 둘 것인가. - 길을 열었느냐 막았느냐
  • 기사등록 2017-04-28 13:05:44
  • 수정 2017-04-28 15: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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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에 “개벽기 때는 날 살리는 소 울음소리와 해인(살 수 있는 법방)을 찾으라”하였다.

 

민족종교인 증산도의 도전에는 개벽기의 소 울음 소리를 치유와 깨달음, 보호와 구원의 태을주라 하였다.

어린 시절 영산강이 울고 나면 부모들은 놀라 절대로 강가에 가지마라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친구 아니면 동네 아저씨가 변을 당하고는 하였는데, 강이 운다는 것은 인간이 강을 소홀히 하여 힘들게 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여겼다.

 

그만큼 자연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 자체가 인간의 근본임을 깨닫고 있었다.

 

마을 앞 당산나무에 제사를 모시는 소박한 정성이 곧 하늘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그 자체가 신성인 것이다.

 

그럼에도 전국토의 홍수와 가뭄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4대강의 사업은 강가의 돌 하나도 헛되이 자리하지 않은 자연의 이법을 저버리고 인위적으로 뒤집어 엎어놓고서 그 대가는 누가 챙기고 고통은 누가 감내 하여야 하는가.

 

산자와 죽은 자의 공간에 있어 강가의 바위 하나에도 죽은 자의 영혼이 깃들 수도 있을 것인데 모두 다 헝클어 놓고 그 업보를 어찌 감당할꼬.

 

다른 사람의 평화를 흔들어 수도 없는 사람들의 생명고혈을 짜내어 몇 몇의 부를 추구한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산자와 죽은 자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 대 변란을 외면한 채, 앞으로 새로운 태양만을 맞이하면 그 뿐인가.

 

인생이 비록 100년의 뒤안길 일지라도 면면하게 이어진 숭고한 천성을 내치고 저속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승냥이 같은 욕망을 척결하지 못한다면 대대손손 후회만이 남을 것이다.

 

강물을 잘 관리하여 인간과 물고기와 배의 길을 연다고 해놓고 모두의 길을 막는 보를 수없이 설치하여 오히려 갈 길을 막아놓고 녹조로 변해가는 물을 담고서도 시치미를 떼고 모른 채 할 것인가.

 

용서하고 사랑할 것이 지천에 깔려 있어도 세월의 강물을 유린한 업보와 그로 인하여 받은 국민들의 고통이 하늘에 있거늘 다른 동네 불 보듯 한다면 로마를 태우며 노래 부르던 네로 황제와 다를 바가 없다.

 

원인이 제 발밑에 있는데도 손가락으로 엉뚱한 사람을 가리키고 다른 사람의 밟은 발을 향하여 내가 복잡한데 발을 내발 밑에 두면 어찌하느냐고 하니 참으로 가관이다.

 

어차피 집을 고치려 했으면 섬돌부터 시원하게 바꾸고 썩은 기둥과 벽을 과감하게 허물고 비록 초가삼간 일지라도 흙과 풀잎의 향내가 풍기는 소박한 집으로 다시 꾸며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탕을 돌리는 자의 뒷길에 마각이 있고, 진실 된 개혁의 횃불 밑에는 보잘 것 없는 재와 그림자만 있을 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속아서도 안 되고 속이려 하는 자를 용서해서도 안 될 것인데, 4대강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공사비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지 차분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차라리 그 돈을 강가의 사람들 모두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으면 돌고 돌아 파생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익을 창출 하였을 것인데도 나오느니 한숨이요 터지느니 원망이다.

 

영산강의 물길을 연다고 시작하였던 사업의 뒤 끝에 문전옥답과도 같은 나주평야의 상당부분은 갈대밭이 되었고 강변을 따라 무심한 강물만이 고요히 멈추어 통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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