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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미래, 식민사관의 탄핵.
  • 기사등록 2017-02-14 15:19:30
  • 수정 2017-02-14 15: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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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술국치의 이면에는 을사오적이 있었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이완용은 민족의 형상인 나라를 팔았으며, 우리의 역사는 그야말로 민족의 혼백이나 다름이 없을 터 임에도 그의 손자인 이병도가 이를 크게 왜곡 하였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한민족의 동화에 혈안이 되었던 일본 제국주의가 추진하던 역사 말살작업의 최선봉에 “조선사편수회”가 있었으며 주요 조직원으로 이병도가 활동하면서 “진단학회”까지 결성하여 민족혼의 말살 정책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해방된 나라에서 참회록을 써야 할 순간에 오히려 친일 지주를 중심으로 결성한 한민당의 당수로 취임한 이승만의 비호아래 문교부장관도 지내고 훈장도 받으면서 축소 왜곡으로 얼룩진 그릇된 역사를 밑천으로 후학을 양성 하였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지금도 세대를 달리해가며 잘못된 역사를 버젓이 강단에서 가르치고 진정한 상고사의 사료 한 조각이라도 발견되면 오히려 푸대접하여 비하하는 현실을 목견하고 며칠 밤을 새우면서 잠 못 들고 수없이 되새겨 보아도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식민사관의 탄핵이다.

 

1945년 해방이 된 후로 무려 70여년 이상이 지나갔어도 한 치의 진전도 없는 작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암흑인데, 이번에야 말로 하늘이 종을 울렸으면 땅도 움직이고 사람이 깨쳐 일어나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아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판국에, 누군가 몇 달 빨리 정권을 잡는 것 무엇이 그렇게 중요하고 과연 난국을 타개할 대책은 수립이 되었는가.

 

대통령의 탄핵은 헌법재판소가 법리에 맞게 냉정하게 판단할 사안이므로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의 부조리를 차근차근 찾아내어 머리를 맞대 해결을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미루어 보건데 문자도 없던 시대의 역사는 바위 등에 새겨진 그림과 부호로 전해지다 구전을 통하여 후손들의 가슴으로 면면히 이어지며 어느 시점에 문자가 형성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기록을 하였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상고시대에 “녹서”가 있었으며, 단군시대에 정음 38자가 엄연하게 존재한 기록이 있고 현재도 전해지고 있으나, 한자를 중시하여 사용하다 그 운용 방법을 잃어 버렸으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위 38자를 축약한 것으로 추정이 되며 그 효용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여 진다.

 

일제가 조선조 말에 왕실과 민간으로부터 수거하여 말살한 약 20여만 권의 비서 중 일부는 반드시 지금도 살아 있게 마련으로(일본 황실의 도서관, 고분, 홍산문화지역(고조선)의 발굴, 백두산 북방 400백만평 분지 밑, 중국 전역) 언젠가 낱낱이 밝혀질 날이 있을 것이다.

 

우리민족에게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상고시대의 역사자료로 “한단고기”가 있는데 위에 기재된 엄청난 사료의 내용과 연대를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맞아 들어가고, 그 중에 오성취루 현상만을 살펴 보아도 과학적인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추출한 연대가 거의 기록과 일치하다고 하니 그 내용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이병도를 비롯한 일본 제국주의 사관의 근간은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인데 과학이나 법률이 아닌 역사에 적용하는 실증주의는 마치 빈 땅을 갈아야 할 트랙터로 고구마 밭을 갈아 엎어버리는 것 같아, 의도적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료는 그냥 버리면 되는 것으로 복원도 어려운 참으로 위험스런 논리인 것이다.

 

문자도 없던 시절의 역사를 실증적인 사료가 아니면 인정할 수가 없으며, 문자로 기록이 되어있음에도 그를 뒷받침 하는 증거가 없으면 정사가 아니라고 폄하한다면 과연 입증된 사료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할 뿐이다.

 

실증주의 사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친자확인을 해보지 않았기에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득불 주장한다면 아직은 검증이 안돼서 그 말씀이 틀림없다고 대답할 것인가.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부모와 자식과 그 손자 간에 과학적인 검사를 마치고 확증을 통하여 대가족을 이룬 것이 아니고 집안의 내력과 생김새와 풍미를 바탕으로 은연중 누가 보아도 가족임에 틀림이 없다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대대손손 기나긴 삶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문자가 생성된 이후 상고시대의 역사는 그 기록 자체가 허황된 것이 아니면 당시에 예측되는 어느 정도의 상황적 타당성을 바탕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고 보여 진다.

 

현대의 역사를 논하는데 있어 과학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라도 필요하지 않을 때 굳이 과학적인 검증을 주장하는 것 또한 사족에 불과하다.

 

실증주의 사관을 철저하게 주장한다는 일본이 멀쩡한 우리나라의 독도를 역사가 뒷받침하는 사료들이 충분하게 있음에도 오히려 이를 무시하고 자기들의 입맛대로 그나마 억지로 짜 맞추어 자신들의 땅이라고 국정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는 태도는 실로 황당하다.

 

우리의 찬란한 선사시대의 기록이 있고 일본의 작태를 눈앞에서 빤히 지켜보면서도 무엇이 두려워 일본이 짜깁기 해준 역사를 우리의 것이라고 수십 년 동안 고집하여 후손에 가르치고, 우리 것을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뼈에 사무치는 어리석음 또한 무엇인가.

 

민족의 호연지기와 진취적인 기상을 수 백 년의 세월 동안 스스로 박해를 하였던 처절한 패배주의를 시원하게 걷어내지 못하여 뒷날 후손들로부터 모래밭에 혀를 박고 죽어도 마땅한 선조들이었다는 비난을 받을 일이 염려되어 등골을 타고 내리는 소름이 끼칠 뿐이다.

 

요즈음 새로운 스포츠로 유행하는 격투기가 인간의 본능적인 투쟁의 역사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여 지는데, 세 사람의 심판 중에 두 사람은 동점으로 심판하였고, 오로지 한사람만이 1점의 차이를 두었다면 어떠한 판정을 하여야 하는가.

 

합계 1점을 더 받은 선수를 승자로 판단한다면 우리사회가 그동안 숫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중대한 오류로, 동점으로 심판한 두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여 무승부를 선언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개개 민족의 유전된 기질과 국가건설의 이념에 의하여 살아서 이어진 끈끈한 과거를 현재의 프리즘으로 투영하여 비추어 보인 실체가 바로 현실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건전한 국민들 과반수를 넘어서는 정책의 결정이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하고, 국가의 중대사에 있어서는 만장일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지만, 세 사람 중 두 사람의 생각이 하나에 일치하더라도 합리적인 결정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고 교사는 가르치지 않겠다하고 학생이 배우지 않겠다하는 식민사관은 이 땅에서 탄핵되어야 마땅하고, 이를 주장하고 고집하는 자 또한 먼 훗날 역사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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