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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의 좌충우돌 "거리의 천사"
  • 기사등록 2013-10-28 12: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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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가을이 깊어가면서 가로수의 낙엽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거리에는 스산한 바람이 이리저리 어지럽기만 합니다

엊그제 더위는 그야말로 인내심의 끝자락에 사람을 걸쳐 놓고 들어와도 덥고 나가도 더운 극심한 상황으로 “입야서 불입야서”의 형국을 연출하였습니다.

예전에 고승께서 제자를 가르치면서 땅에다 지팡이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입야타 불입야타”를 외치면 제자는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도 때리고 안 들어가도 때리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가슴을 태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늘은 인간에게 한번 도전을 해보라고 하다가 도전이 의외로 거칠어 방종하다 보면 한순간에 분별도 없이 가혹하게 응징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름대로 상념의 자락을 펼쳐 과연 이생의 최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묻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고 지극한 삶이 되는지를 의문스런 마음으로 무언가 구하려 하지만 무엇이 진정한 것인지를 시원스럽게 제시하거나 설파한 좌표가 없는 것입니다.

종종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저버린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히 한순간의 흑점일 뿐 모든 존재들은 순수함에서부터 발걸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지난밤의 향연의 끝자락을 털어내고 세속의 아픔을 자근자근 삭혀보려고 꼭두새벽에 무작정 거리로 나섰습니다.

동이 트면서 여명이 열리는 거리에 나서 보니 혼자 걷기에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전거에 의지하여 쓰레기 봉지를 매달고 거리의 구석구석에 쳐 박혀 있는 불순물을 일일이 끄집어내어 모으는 어르신을 목견하였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시야를 덮어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리를 벅찬 가슴을 안고 걸어가다가 하늘을 향해 울음 머금어 난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진실로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고 어지러운 세상을 말도 없이 치우는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미칠 때 정말 자괴감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입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오가는 통로인데 누구는 자동차로 번개처럼 달리고 누구는 시내버스에 의지하여 값싼 통행료에 인생의 기름인 세월을 마냥 태우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수도 없이 많은 역정들이 무질서하게 난립하는 온 세상의 축소판으로 걷는 자와 달리는 자 모두가 거리의 천사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는 세상이 지옥이나 다름이 없다고 폄하하기에는 아쉬움이 따르고 거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연들이 정말 최악의 것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모임 시간에 쫒기는 한 사나이는 나의 친구였는데 급한 나머지 편하게 보이는 장소에 주차를 하고 볼일을 보고 재차 다른 장소에 부랴부랴 달려가 보니 차 꽁무니에 생각지도 못하였던 의자가 딸려왔습니다
땅에 부딪혀 튀는 의자가 달리는 차량의 속력을 이겨내지는 못하여 다행히 차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의 가게 앞에 무단주차를 한 차량을 혼내주려는 고약한 심보의 할아버지가 자신이 애지중지 하던 철제의자를 철사 줄로 차량에 묶어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나이가 2차 장소로 이동을 한 것입니다.

꽁무니에서 통통 튀는 의자를 달고 달리는 차량을 보는 시민들과 목적지에 도착하여 매달린 의자를 바라보는 사나이는 모두 거리의 천사였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어느 택시 운전사는 교대시간이 촉박한 시간에 광주 충장로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면 목적지인 전주에 도착하였다가 되돌아 올수가 있다고 판단하고, 택시요금을 묻는 승객에게 적정한 가격을 말하고 문 닫는 소리를 시작으로 이미 흥정이 끝났다고 판단한 나머지 목숨을 걸고 냅다 달렸습니다.

전주시의 나들목을 통과하여 어느 동네로 가시느냐고 물으며 백미러를 쳐다보니 대답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한밤중에 가슴이 철렁하게 혼이 빠져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금만 물어보고 사람이 타지도 않았는데 성급한 운전사는 혼자서 자가당착에 빠져 원맨쇼를 한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제가 아는 서 사장은 기골도 장대하고 유머도 풍부한데 젊은 시절에 무안 일로에서 고모부가 운영하는 택시의 아르바이트를 설 명절에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일인데 일로역이나 터미널에서 읍내 동네를 한번 운행하는데 명절에는 삼천 원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자가용도 없던 때라 하루에도 수십 번을 운항할 시간에 한코스에 삼만 원을 준다고 하니 덜컥 완도에 간다고 하는 손님을 모시고 장거리를 운행하다보니 교통사정도 어렵던 시절 해가 서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지금처럼 이동통신도 없었기에 도저히 연락할 길이 없었던 고모부는 차량을 가지고 종적을 감춰버린 조카의 행방에 속이 뒤틀리고 말았습니다.

땅거미가 밀려온 일로에 돌아온 서사장이 명절 장을 뒤늦게 본 또 한사람의 할아버지를 태웠는데 급하게 달리는 순간 집 앞을 지나면서 차를 세우고 뛰어가 잠간 후에 올테니 밥상을 차려 놓으라 말하고는 부리나케 달리는 동안 뒤에서는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인기척이 분명히 있었는데, 정작 마을에 도착하여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놀란 서사장이 방금 차에 오른 영감은 귀신임에 틀림이 없다고 소리를 지르며 비포장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려 혼비백산 회사로 돌아와 얼이 빠져 멍하게 있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입니다.

“담배 한 갑 사려고 잠간 내렸는데 사람을 놓아두고 택시가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짧은 찰나에 손님으로 탔던 할아버지도 운전사보다 더 빠른 동작으로 근처의 가게로 담배를 사러 뛰어갔던 것입니다.

서 사장은 그 다음날 바로 해고를 당하였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운전자가 어머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리다보니 교통신호에 위반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순찰중인 차량이 번호를 호명하며 정지하라고 하였음에도 무작정 도망을 가는데, 어느 정도 따라오다가 포기를 할 것으로 믿었던 순찰차가 한없이 추격을 하고 운전자는 끝까지 도망을 가는데 막다른 골목의 상갓집에 막혀버린 것입니다.

상가 집 앞에 차량을 주차시키고 순찰차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궁한 나머지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살펴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나이가 연로하신 분으로 갑자기 비탄의 눈물을 흘리면서 문상을 하는 동안 어찌나 연극이 실감났던지 후손들도 감정이 격하여 따라서 울음바다가 되는 바람에 경찰관이 어찌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이 어머님이 전화로 아파서 죽는다고 재촉하지만 평소 정말로 존경하던 선배가 돌아가셔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대답하며 버티는 사이 얼마나 기다리다 지친 경찰관은 정작 철수를 하였지만, 이제는 망자와의 친분을 너무나 과시한 나머지 체면상 상가 집을 그대로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날 장지까지 따라가서 망자를 모시고 우여곡절 끝에 탈출한 운전자가 119로 병원에 실려가 입원한 어머님을 찾자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는 참담한 통보를 받게 된 것입니다.

평소에 성실하고 침착한 사람으로 알던 직장 동료였는데 어느 날 기관장을 모시고 호텔에서 행사를 마치고 주변의 관련된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마치고 차문을 열었다가 다른 사람과 미처 매듭짓지 못한 이야기로 다시 문을 닫았는데 운전자는 평소대로 편안하게 출발하여 한참 시내를 달리고 있는 동안 핸드폰이 울린 것입니다.

당연히 뒷좌석에 앉아계시는 것으로 알았던 분의 핸드폰 전화를 받았던 운전자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마 1994년도로 기억하는데 제가 광주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로 나주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목포에는 처자식이 살고 있었고, 주로 나주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술자리가 길어지다 보면 정규노선버스가 끊기는 시간에, 목적지를 향하는 손님들을 한사람씩 모아 전 좌석 4명이 맞아야 출발하는 총알택시를 00:30경에 타고 ‘목포로 가도 좋고 나주로 가도 좋다’고 말하고 잠이 들고 말았는데, 거리의 천사께서 친절하게 목포로 향하는 손님을 애써 모집하여 새벽 3시도 넘긴 시간에 무작정 내려준 것입니다.

그때까지도 상황판단이 안 되는 와중에 목포 택시를 타고 또다시 목포에 가자고 하면서 3호 광장을 한 바퀴 돌고 내려준 운전자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이리저리 해매이다 다른 차를 잡아타고 산정동에 가자고 하여 또다시 요금을 지불하고 내려, 언덕길을 터벅터벅 걸어올라 방에 들어서니 시간이 벌써 새벽 5시가 넘어서고 있어 광주로 향하는 출근 준비 시간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거리의 천사가 고맙다고 하여도 이 시간에 데려다 줄려면 차라리 그대로 두었어야 하는데, 목욕 한번하고 정신 차려 밥 한술 먹고 곧바로 광주로 향하였던 이후 몇 날이 지난 날, 개인택시를 운전하던 조여사의 오빠가 하는 말이 “잘 알던 후배가 며칠 전 어떤 미친놈을 태웠는데 목포에서 목포가자고 하면서 한 바퀴 돌고나면 택시비를 주고 내리고, 깊은 밤에 몇 바퀴 돌다가 걱정이 되어 다시 그곳에 가보니 또다시 그 사람이 산정동에 가자고 하여 데려다 주었더니 차비를 주드라”고 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그 당사자가 누군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서울에서 남자손님이 와서 자신이 머무는 여관에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하여 내키지 않지만 못 이겨 찾아갔다가 귀가를 위하여 여관의 현관문 앞을 나서는 순간, 용케도 때마침 달려오는 빈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자네 어디 갔다 오는가”고 하여 정신이 번쩍 들어 운전자를 쳐다보니 조여사의 오빠인데 깜짝 놀라 “손님을 만나고 온다”고 해놓고 도둑이 저절로 발저린다고 하여 보름이 지난 뒤 조 여사에게 전화상으로 “오빠가 무슨 이야기 안 하던가”하니 “아무 이야기도 안하던디” 하길래 무심코 죄도 짓지 않았으면서도 떨리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이놈의 거리에는 천사들의 이야기가 끝없이 엮어지고 있는 것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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