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명, 악취 나는 돈, 향기 나는 돈
2013-07-16
편집국 jnnews.co.kr@hanmail.net
[살림단상 김예명 칼럼]최근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동남아에 가서 느꼈던 충격이 되살아났다.
관광 유적지 어디에서나 어린 아이들이 맨 발로 다니며 "원 달러, 플리즈"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을 확연하게 느끼게 해준 그 나라의 가난은 여행자의 기분을 몹시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세 개에 원 달러, 아이들이 파는 조악한 팔찌 가격이다.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품목이 다 똑같으니 다닐 때마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두 아이를 만났는데, 이 아이들은 팔찌를 들어 보이며 그저 "플리즈, 플리즈"만 외치는 게 아닌가.
팔찌는 사지 않고 두 아이에게 '원 달러'씩 쥐어주고 가는데, 일 행 중 한 사람이 "그건 아이들을 구걸하게 만드는 거야."하며 정색을 했다.
잠시 혼란에 빠졌다. 내 행위가 부적절했던 걸까? 그렇다면 아이들의 "원 달러, 플리즈"는 장사인 걸까? 장사라면 "아주 싸요. 많이 드릴게요. 제발, 제발 사 주세요."라는 호객이 온당한 걸까? 장사라고 백 번 양보해 생각한다 해도 나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단지 싸다거나 불쌍하다는 이유로 사는 건 올바른가? 장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나이가 어린 건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장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헐벗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있는 건 또 어떻고?
이런 생각은 휴가철마다 판치는 바가지 상흔에까지 이어졌다. 장사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상 가격 유동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바가지 상흔'이라는 고약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공정한 매매 행위가 아닌데다가, 제대로 된 서비스도 없이 한 철 한 밑천 단단히 챙기겠다는 사욕 때문이다. 상인 정신의 부재요, 상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휴가철 장사꾼의 주머니에는 그래서 구매자들의 불만과 욕설, 악취 나는 돈만 쌓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자영업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2013년 현재 자영업자 비율이 28.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고 한다. 우리 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터키, 그리스, 멕시코 등이라 하는 것만 봐도 선진국이 아닌 국가일수록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주변에서 보면 직장 명퇴 후 '장사나 해 볼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장사를 펼친 이후에도 '상인'이기보다는 '장사꾼'이 되는 경우가 더 많고.
얼마 전에 출간된 '상인 이야기'라는 책은 '인의와 실리를 좇아 천하를 밟은 중국 상인사' 이야기다. 이 책은 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중국 상업의 변화와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중국 상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인은 신분제 전통 사회에서 천민 직업군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천하를 누비면서 차츰 경제력을 갖게 된 상인들은 수 천 년 간 이어져 온 차별과 멸시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시도를 하게 된다. 지역의 토목 건설 사업이나 교육 사업, 자연재해 발생 시 공익 사업은 물론 출판과 문화재 수집 및 예술 후원 사업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덕을 실천했다.
정치에도 입문해 상인으로서 갈고 닦은 넓은 견문과 운영 능력을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삼은 사례도 많다. 그 결과 공이 많은 상인들은 황제에게서 관직을 받고 사회에서 군자 칭호를 들으면서 존경을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상인은 '고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고도'란 '장사 고'에 '길 도'를 쓴 한자로 '상인의 도'이면서 '아름다운 길' 또는 '뛰어난 도리'라는 속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이쯤 되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중국의 뛰어난 상인은 쓰임새에 있어 '향기 나는 돈'을 갖고 있다고 봐야겠다.
'개 같이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을 생각해 본다. '개 같이 번다'는 말에서 부지런함과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돈벌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휴가철 바가지 상흔의 장사꾼들 중에서도 '개 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는' 이들이 있을까? '개 같이 부지런한 상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똥개처럼 구린 돈을 버는 장사꾼'이라면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에겐 중국 상인사와 같은 상인의 발자취를 온전히 담은 기록물이 없다고 하니 뒤늦게 장사를 시작하는 이들이 '상인 정신'이 무엇인지, '상인 정신'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공부하는 것도 좋을 일이다. 이 세상 사는 모든 것에는 '윤리'가 있고 윤리의 실천이 사람 사는 길일 것이므로.
이제 본격 휴가철을 앞두고 있다. 여행지에서 악취 나는 돈을 만날 것이냐, 향기 나는 돈을 만날 것이냐가 휴가 기분을 좌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사꾼이여, 내게는 제발 다가오지 마라. 제발, 제발. "플리즈~".
살림단상 글보기 :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447
e-mail : munch-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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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유적지 어디에서나 어린 아이들이 맨 발로 다니며 "원 달러, 플리즈"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을 확연하게 느끼게 해준 그 나라의 가난은 여행자의 기분을 몹시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세 개에 원 달러, 아이들이 파는 조악한 팔찌 가격이다.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이었지만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품목이 다 똑같으니 다닐 때마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두 아이를 만났는데, 이 아이들은 팔찌를 들어 보이며 그저 "플리즈, 플리즈"만 외치는 게 아닌가.
팔찌는 사지 않고 두 아이에게 '원 달러'씩 쥐어주고 가는데, 일 행 중 한 사람이 "그건 아이들을 구걸하게 만드는 거야."하며 정색을 했다.
잠시 혼란에 빠졌다. 내 행위가 부적절했던 걸까? 그렇다면 아이들의 "원 달러, 플리즈"는 장사인 걸까? 장사라면 "아주 싸요. 많이 드릴게요. 제발, 제발 사 주세요."라는 호객이 온당한 걸까? 장사라고 백 번 양보해 생각한다 해도 나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단지 싸다거나 불쌍하다는 이유로 사는 건 올바른가? 장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나이가 어린 건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장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헐벗고 지저분한 모습으로 있는 건 또 어떻고?
이런 생각은 휴가철마다 판치는 바가지 상흔에까지 이어졌다. 장사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원칙상 가격 유동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바가지 상흔'이라는 고약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공정한 매매 행위가 아닌데다가, 제대로 된 서비스도 없이 한 철 한 밑천 단단히 챙기겠다는 사욕 때문이다. 상인 정신의 부재요, 상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휴가철 장사꾼의 주머니에는 그래서 구매자들의 불만과 욕설, 악취 나는 돈만 쌓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자영업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2013년 현재 자영업자 비율이 28.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고 한다. 우리 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터키, 그리스, 멕시코 등이라 하는 것만 봐도 선진국이 아닌 국가일수록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하긴 주변에서 보면 직장 명퇴 후 '장사나 해 볼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장사를 펼친 이후에도 '상인'이기보다는 '장사꾼'이 되는 경우가 더 많고.
얼마 전에 출간된 '상인 이야기'라는 책은 '인의와 실리를 좇아 천하를 밟은 중국 상인사' 이야기다. 이 책은 역사의 전개 과정 속에서 중국 상업의 변화와 큰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중국 상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인은 신분제 전통 사회에서 천민 직업군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천하를 누비면서 차츰 경제력을 갖게 된 상인들은 수 천 년 간 이어져 온 차별과 멸시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시도를 하게 된다. 지역의 토목 건설 사업이나 교육 사업, 자연재해 발생 시 공익 사업은 물론 출판과 문화재 수집 및 예술 후원 사업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덕을 실천했다.
정치에도 입문해 상인으로서 갈고 닦은 넓은 견문과 운영 능력을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삼은 사례도 많다. 그 결과 공이 많은 상인들은 황제에게서 관직을 받고 사회에서 군자 칭호를 들으면서 존경을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상인은 '고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고도'란 '장사 고'에 '길 도'를 쓴 한자로 '상인의 도'이면서 '아름다운 길' 또는 '뛰어난 도리'라는 속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이쯤 되면 역사 속에 등장하는 중국의 뛰어난 상인은 쓰임새에 있어 '향기 나는 돈'을 갖고 있다고 봐야겠다.
'개 같이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을 생각해 본다. '개 같이 번다'는 말에서 부지런함과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돈벌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휴가철 바가지 상흔의 장사꾼들 중에서도 '개 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는' 이들이 있을까? '개 같이 부지런한 상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똥개처럼 구린 돈을 버는 장사꾼'이라면 어림없는 일일 것이다.
우리에겐 중국 상인사와 같은 상인의 발자취를 온전히 담은 기록물이 없다고 하니 뒤늦게 장사를 시작하는 이들이 '상인 정신'이 무엇인지, '상인 정신'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공부하는 것도 좋을 일이다. 이 세상 사는 모든 것에는 '윤리'가 있고 윤리의 실천이 사람 사는 길일 것이므로.
이제 본격 휴가철을 앞두고 있다. 여행지에서 악취 나는 돈을 만날 것이냐, 향기 나는 돈을 만날 것이냐가 휴가 기분을 좌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장사꾼이여, 내게는 제발 다가오지 마라. 제발, 제발.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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