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역설의 영웅
오미아 박사/살림문화재단 이사 -
2013-05-30
살림문화재단 오미아 jnnews.co.kr@hanmail.net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에 '싸이'라는 영웅이 나타났다.]
싸이의 행보는 글로벌 시대를 실감케 하는 증거이고 우리들의 로망이 현실화 되는 드라마였다. 싸이가 이룬 기적은 한강의 기적보다도 더 친근하고 충격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하면서도 이런 현상이 낯설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국가를 빛내고 있다고 생각되는 싸이에게 맹목적인 애국심이 투영 되어져서 국가대표급 영웅 만들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이러한 애국주의적 열풍은 싸이의 모든 행위가 국위선양이고 싸이를 비판 하는 것은 매국노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하물며 국가 수장조차도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 정책을 이해시키고 홍보하기 위해 싸이의 선례를 들먹이며 그와 동일시하기에 급급해 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
이 시점에서 싸이가 진정 우리가 꿈꿔 왔던 글로벌 인재가 아닌가 싶다. 돈 있는 자들이 그토록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내야만 했던 이유. 국내에서 아둥바둥 경쟁 할 필요도 없고,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소문 안 나는 곳으로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갈 데 까지 가보고 놀만큼 놀아 봐야 볼 수 있는 경계를 돈이 되는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면 유흥비 투자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특별국민으로서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성공하고 볼 일이다.
[세계무대에서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 싸이는 로망의 교과서이며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비싼 경비를 치루더라도, 과정이 정당하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만 낼 수 있다면 우리 부모들은 서슴없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대한민국 기러기 아빠들의 피눈물로 또 다른 싸이를 계속해서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다.
싸이 부모님의 재력이 좋다는 것은 인터넷 신상 털기로 이미 잘 알려 진 바다. 싸이의 행보에 따라 YG, 오로라 등 관련 업체의 주식가치가 치솟는 것은 물론이고 싸이 부모님 회사의 주식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싸이가 이전에 대마초를 피우고 구속 되었을 때 부모님이 '너가 그럴 줄 알았다'며 돌아서신 일화를 말하며 이제 독립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싸이 스스로도 놀 만큼 놀았다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하고 있고, 마치 그 역량으로 자신의 스타일이 이루어졌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노는 데도 적잖은 비용이 드는지라 부모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생활의 무게에 눌려 싸이의 스타일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목표는 단 하나 '여자들이 자신에게 주목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웃기고 기발하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 어떤 대중 가수가 이와 같은 사랑을 받았겠는가.]
남진, 나훈아 오빠, 송창식, 윤형주 오빠, 조용필 오빠, 신혜철 교주님 시절에도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의 족쇄를 벗어 날 수는 없었다. 싸이처럼 경박하고 뻔뻔하고 불량한 이미지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극단적이지만 그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펜들도 이유 불문 하고 막무가네다.
싸이의 낯 뜨거운 뮤비가 그들의 취향일까. 모두 싸이의 전자음 가득한 일렉트릭한 음악에 중독된 것일까. 아니면 싸이 오빠를 가슴 설레며 사랑하는 사생팬들의 과욕일까. 웃기고 기발하고 섹슈얼한 스타일이 이시대의 대세이긴 하지만 유독 싸이만이 모든 것이 다 용서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싸이에 대한 평가가 우리의 평가를 넘어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미 대한민국 가수가 아닌 글로벌 스타로서 시건방을 떨어도 나무랄 자가 없다.]
B급가수임을 자처하는 싸이가 하버드에서 강의를 하고, 각종 프로그램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스트를 넘어서 프로그램을 이끄는 MC가 되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모습을 보이니 단순히 B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고급스럽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싸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후배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이미 그는 K팝을 이끄는 메이져 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것이다.
전략과 전술이 치밀해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그의 배후를 들춰 보면 대한민국의 힘이 보인다. 그 힘의 원천은 싸이의 스타일이 아니라 싸이를 만들어낸 K팝의 파급력이다.
대한민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이 양산한 상품들이 아시아 시장을 석권하고 유럽, 남미 등을 장악해 나가는 동안 K팝은 많은 노하우와 자신감이 생겨났다. 미국시장의 특수성을 감안 하더라도 K팝 시장의 규모가 무시 할 만큼 만만 하지 않다.
패팀김 선생님이 그 옛날 혼자 힘으로 4년여 동안 두드려도 열수 없었던 빗장을 단순히 싸이 혼자서 한 곡 가지고 열어젖힌 것은 아니다. 그 한곡을 터뜨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다. 세븐의 실패도 보았고, 빅뱅의 가능성도 보았지만, 드디어 기적처럼 예기치 않게 싸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싸이의 기적이 미국 시장의 원리에서 벗어나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싸이의 등장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SNS를 통해서 전파된 싸이의 동영상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 하면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미국도 예외 일 수 없었다. 미국시장이 주도한 선진의 문화가 아니라 전 세계가 동시 다발적으로 공유한 컨텐츠였다.
미국 빌보드 챠트에 오르기 위해서 음원 수익, 라디오 또는 TV 출연, 가수에 대한 인지도 등의 과정이 필요 한데 싸이는 이런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혜성처럼 나타나서 일약 스타가 되어버렸다.
가장 대중적인 스타가 되어버린 싸이는 가장 대중문화에 걸맞는 모습이다. 대중문화는 깊이 생각 할 필요가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하고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있다.
[싸이의 영악함은 이런 대중문화의 속성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이는 자신의 컨텐츠에 대한 소유권을 내려놓음으로써 네티즌들과 함께 하는 공유의 힘을 끌어 들였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스타일의 패러디가 터져 나오고, SNS를 통해 제작된 동영상을 실어 나르며 함께 공유하는 가운데에서 새로운 판이 벌어진 것이다. 자발적으로 움직여주는 네티즌들의 충성도와 테크닉은 대한민국을 따라 올 자가 없다.
대한민국이 디지털 컨텐츠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세계적 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부담감 속에 탄생한 후속곡 젠틀맨이 애국주의적 열풍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젠틀하게 하려고 해도 더 자극적이고 작위적일 수밖에 없다.
[싸이가 선택한 컨셉은 역설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아웃사이더 가수가 벌이는 역설의 드라마는 그 자체로 엽기적이다. 싸이는 악랄하고 비열하게 하고픈 것을 다 하는 용기, 패기, 똘기를 가진 멋쟁이 젠틀맨의 무용담으로 무장했다.
그렇지만 상식적이지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은 아웃사이더를 선망하고 열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경박하고 낯 뜨거운 화면들을 보고 또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더욱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음악에 중독 될수록 젠틀맨의 역설이 우리들의 현실이고 우리의 한계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떤 이들은 싸이의 뮤비가 일루미나티의 악마주의적 상징이라고도 하고, 마더 파더 젠틀맨(mother father gentleman)인지 마더 퍼커 젠틀맨(mother fucker gentleman)인지 헷갈리게 하는 포로노그라피 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싸이의 역설적인 무용담은 미국 빌보드를 제외 하고는 온갖 기존의 기록들을 갱신하며 전 세계인이 가장 빨리 많이 본 컨텐츠가 되었다.
싸이는 답답한 세상을 향해 당신들이 바라는 데로 살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용기를 가진 자신이 젠틀맨이고 챔피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금기를 깨는 즐거움과 경계를 넘어서는 즐거움이 모두 달콤한 쾌락의 열매를 가지고 있어도 너무 과하게 취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작위적인 의도가 앞서서 일까 후속곡 젠틀맨은 싸이 특유의 경쾌함이 줄어 든 느낌이다.
싸이가 왜 화끈 해야 하는지 왜 새끈 해야 하는지 알랑가 모르겠지만 악소리 나게 놀아봐야 하는데 노는 게 부족하다. 역설적으로 싸이 스타일이 너무 젠틀 해져서 싸이 맛이 안 난다.
젠틀맨에 대한 평가가 호 불호로 나뉘고, 생각만큼 미국 시장이 열리지 않는 이유도 싸이의 자유로운 영혼이 정체성을 잃고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싸이를 좋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끝도 없이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젠틀맨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 대해서도 비로소 안심이 된다는 둥, 이것이 정상이라는 둥 하며 허세 아닌 허세를 부린다.
이탈리아 축구 경기장에서 인종차별적 야유를 퍼붓는 관중들에게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나라도 열정적이라 분위기를 이해 할 수 있다"는 말로 젠틀하게 마무리했다. 역시 나이가 들어서 인지 영감 같은 지혜로움이 있다.
싸이가 언제나, 어디서나 기죽지 않고, 자신을 주목하게 만드는 힘은 단순히 자신감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을 다독이는 힘, 현실에 만족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힘. 이런 싸이의 내공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싸이는 여느 특권층 자식과는 다르게 군대를 다녀오고도 또 다시 군대를 갈 수 밖에 없었던 특수성 때문인 것 같다.
꿈에도 가기 싫은 군대를 다시 가게 되었을 때 그가 느끼는 참담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몇일만 버티면 공익으로 근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싸이인데 너무 후지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또 다시 군대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자식까지 있는 가장이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그의 행보가 지금의 세계적인 스타로 단련시킨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겪어내고 돌아온 싸이의 현실이 녹녹하지 않았던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연예계에서 배 나온 예비역 아저씨를 받아주는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기적처럼 자신에게 손을 내민 선배와 함께 또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때 싸이는 한 없이 기쁘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둥지로 자리를 옮겼을지라도 그와 함께 누볐던 무대가 귀하고 소중한 자산인 것을 싸이가 모를 리 없다. 김장훈과 소주 한 병으로 해치운 화해가 싸이에게는 평생의 빚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이가 기억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가수이길 꿈꿨던 김장훈 선배가 세계무대를 누비는 싸이에게 힘들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그 화해의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 하듯이 당당하게 싸이답게 나아가길 희망한다.
한사람의 열 발자국이 열사람의 한발자국만큼 귀하게 여겨지는 시절이다.
[살림칼럼 글보기]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417
e-mai l : ohmia21@daum.net
살림문화재단 오미아 jnnews.co.kr@hanmail.net
싸이의 행보는 글로벌 시대를 실감케 하는 증거이고 우리들의 로망이 현실화 되는 드라마였다. 싸이가 이룬 기적은 한강의 기적보다도 더 친근하고 충격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하면서도 이런 현상이 낯설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국가를 빛내고 있다고 생각되는 싸이에게 맹목적인 애국심이 투영 되어져서 국가대표급 영웅 만들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이러한 애국주의적 열풍은 싸이의 모든 행위가 국위선양이고 싸이를 비판 하는 것은 매국노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하물며 국가 수장조차도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 정책을 이해시키고 홍보하기 위해 싸이의 선례를 들먹이며 그와 동일시하기에 급급해 하는 모습은 어이가 없다.
이 시점에서 싸이가 진정 우리가 꿈꿔 왔던 글로벌 인재가 아닌가 싶다. 돈 있는 자들이 그토록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내야만 했던 이유. 국내에서 아둥바둥 경쟁 할 필요도 없고,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소문 안 나는 곳으로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갈 데 까지 가보고 놀만큼 놀아 봐야 볼 수 있는 경계를 돈이 되는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면 유흥비 투자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특별국민으로서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성공하고 볼 일이다.
[세계무대에서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 싸이는 로망의 교과서이며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비싼 경비를 치루더라도, 과정이 정당하지 않더라도, 좋은 결과만 낼 수 있다면 우리 부모들은 서슴없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대한민국 기러기 아빠들의 피눈물로 또 다른 싸이를 계속해서 만들어 주길 바랄 뿐이다.
싸이 부모님의 재력이 좋다는 것은 인터넷 신상 털기로 이미 잘 알려 진 바다. 싸이의 행보에 따라 YG, 오로라 등 관련 업체의 주식가치가 치솟는 것은 물론이고 싸이 부모님 회사의 주식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싸이가 이전에 대마초를 피우고 구속 되었을 때 부모님이 '너가 그럴 줄 알았다'며 돌아서신 일화를 말하며 이제 독립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싸이 스스로도 놀 만큼 놀았다는 표현을 서슴치 않고 하고 있고, 마치 그 역량으로 자신의 스타일이 이루어졌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노는 데도 적잖은 비용이 드는지라 부모님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생활의 무게에 눌려 싸이의 스타일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목표는 단 하나 '여자들이 자신에게 주목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웃기고 기발하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 어떤 대중 가수가 이와 같은 사랑을 받았겠는가.]
남진, 나훈아 오빠, 송창식, 윤형주 오빠, 조용필 오빠, 신혜철 교주님 시절에도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의 족쇄를 벗어 날 수는 없었다. 싸이처럼 경박하고 뻔뻔하고 불량한 이미지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극단적이지만 그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펜들도 이유 불문 하고 막무가네다.
싸이의 낯 뜨거운 뮤비가 그들의 취향일까. 모두 싸이의 전자음 가득한 일렉트릭한 음악에 중독된 것일까. 아니면 싸이 오빠를 가슴 설레며 사랑하는 사생팬들의 과욕일까. 웃기고 기발하고 섹슈얼한 스타일이 이시대의 대세이긴 하지만 유독 싸이만이 모든 것이 다 용서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싸이에 대한 평가가 우리의 평가를 넘어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미 대한민국 가수가 아닌 글로벌 스타로서 시건방을 떨어도 나무랄 자가 없다.]
B급가수임을 자처하는 싸이가 하버드에서 강의를 하고, 각종 프로그램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스트를 넘어서 프로그램을 이끄는 MC가 되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모습을 보이니 단순히 B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고급스럽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싸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후배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이미 그는 K팝을 이끄는 메이져 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것이다.
전략과 전술이 치밀해서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그의 배후를 들춰 보면 대한민국의 힘이 보인다. 그 힘의 원천은 싸이의 스타일이 아니라 싸이를 만들어낸 K팝의 파급력이다.
대한민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이 양산한 상품들이 아시아 시장을 석권하고 유럽, 남미 등을 장악해 나가는 동안 K팝은 많은 노하우와 자신감이 생겨났다. 미국시장의 특수성을 감안 하더라도 K팝 시장의 규모가 무시 할 만큼 만만 하지 않다.
패팀김 선생님이 그 옛날 혼자 힘으로 4년여 동안 두드려도 열수 없었던 빗장을 단순히 싸이 혼자서 한 곡 가지고 열어젖힌 것은 아니다. 그 한곡을 터뜨리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실패가 있었다. 세븐의 실패도 보았고, 빅뱅의 가능성도 보았지만, 드디어 기적처럼 예기치 않게 싸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싸이의 기적이 미국 시장의 원리에서 벗어나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싸이의 등장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SNS를 통해서 전파된 싸이의 동영상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 하면서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미국도 예외 일 수 없었다. 미국시장이 주도한 선진의 문화가 아니라 전 세계가 동시 다발적으로 공유한 컨텐츠였다.
미국 빌보드 챠트에 오르기 위해서 음원 수익, 라디오 또는 TV 출연, 가수에 대한 인지도 등의 과정이 필요 한데 싸이는 이런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혜성처럼 나타나서 일약 스타가 되어버렸다.
가장 대중적인 스타가 되어버린 싸이는 가장 대중문화에 걸맞는 모습이다. 대중문화는 깊이 생각 할 필요가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하고 자극적이고 중독성이 있다.
[싸이의 영악함은 이런 대중문화의 속성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이는 자신의 컨텐츠에 대한 소유권을 내려놓음으로써 네티즌들과 함께 하는 공유의 힘을 끌어 들였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스타일의 패러디가 터져 나오고, SNS를 통해 제작된 동영상을 실어 나르며 함께 공유하는 가운데에서 새로운 판이 벌어진 것이다. 자발적으로 움직여주는 네티즌들의 충성도와 테크닉은 대한민국을 따라 올 자가 없다.
대한민국이 디지털 컨텐츠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세계적 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부담감 속에 탄생한 후속곡 젠틀맨이 애국주의적 열풍에 휩싸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젠틀하게 하려고 해도 더 자극적이고 작위적일 수밖에 없다.
[싸이가 선택한 컨셉은 역설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아웃사이더 가수가 벌이는 역설의 드라마는 그 자체로 엽기적이다. 싸이는 악랄하고 비열하게 하고픈 것을 다 하는 용기, 패기, 똘기를 가진 멋쟁이 젠틀맨의 무용담으로 무장했다.
그렇지만 상식적이지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은 아웃사이더를 선망하고 열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경박하고 낯 뜨거운 화면들을 보고 또 보고 있는 내 자신이 더욱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음악에 중독 될수록 젠틀맨의 역설이 우리들의 현실이고 우리의 한계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떤 이들은 싸이의 뮤비가 일루미나티의 악마주의적 상징이라고도 하고, 마더 파더 젠틀맨(mother father gentleman)인지 마더 퍼커 젠틀맨(mother fucker gentleman)인지 헷갈리게 하는 포로노그라피 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싸이의 역설적인 무용담은 미국 빌보드를 제외 하고는 온갖 기존의 기록들을 갱신하며 전 세계인이 가장 빨리 많이 본 컨텐츠가 되었다.
싸이는 답답한 세상을 향해 당신들이 바라는 데로 살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용기를 가진 자신이 젠틀맨이고 챔피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금기를 깨는 즐거움과 경계를 넘어서는 즐거움이 모두 달콤한 쾌락의 열매를 가지고 있어도 너무 과하게 취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작위적인 의도가 앞서서 일까 후속곡 젠틀맨은 싸이 특유의 경쾌함이 줄어 든 느낌이다.
싸이가 왜 화끈 해야 하는지 왜 새끈 해야 하는지 알랑가 모르겠지만 악소리 나게 놀아봐야 하는데 노는 게 부족하다. 역설적으로 싸이 스타일이 너무 젠틀 해져서 싸이 맛이 안 난다.
젠틀맨에 대한 평가가 호 불호로 나뉘고, 생각만큼 미국 시장이 열리지 않는 이유도 싸이의 자유로운 영혼이 정체성을 잃고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싸이를 좋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끝도 없이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젠틀맨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 대해서도 비로소 안심이 된다는 둥, 이것이 정상이라는 둥 하며 허세 아닌 허세를 부린다.
이탈리아 축구 경기장에서 인종차별적 야유를 퍼붓는 관중들에게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우리나라도 열정적이라 분위기를 이해 할 수 있다"는 말로 젠틀하게 마무리했다. 역시 나이가 들어서 인지 영감 같은 지혜로움이 있다.
싸이가 언제나, 어디서나 기죽지 않고, 자신을 주목하게 만드는 힘은 단순히 자신감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을 다독이는 힘, 현실에 만족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힘. 이런 싸이의 내공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싸이는 여느 특권층 자식과는 다르게 군대를 다녀오고도 또 다시 군대를 갈 수 밖에 없었던 특수성 때문인 것 같다.
꿈에도 가기 싫은 군대를 다시 가게 되었을 때 그가 느끼는 참담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몇일만 버티면 공익으로 근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싸이인데 너무 후지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또 다시 군대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서른이 넘은 늦은 나이에 자식까지 있는 가장이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그의 행보가 지금의 세계적인 스타로 단련시킨 것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겪어내고 돌아온 싸이의 현실이 녹녹하지 않았던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연예계에서 배 나온 예비역 아저씨를 받아주는 곳이 어디 있었겠는가. 기적처럼 자신에게 손을 내민 선배와 함께 또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을 때 싸이는 한 없이 기쁘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둥지로 자리를 옮겼을지라도 그와 함께 누볐던 무대가 귀하고 소중한 자산인 것을 싸이가 모를 리 없다. 김장훈과 소주 한 병으로 해치운 화해가 싸이에게는 평생의 빚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이가 기억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가수이길 꿈꿨던 김장훈 선배가 세계무대를 누비는 싸이에게 힘들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그 화해의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 하듯이 당당하게 싸이답게 나아가길 희망한다.
한사람의 열 발자국이 열사람의 한발자국만큼 귀하게 여겨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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