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송, ‘茶人’지를 읽으면서 茶 생각
2013-05-22
이우송 yiwoosong@daum.net
[전남인터넷신문] 차에 관한 한 견해와 담론들이 많아 무슨 이야긴들 새롭거나 감흥을 유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차를 대할 때 곧 몸과 마음이 서로 어울려 격조 있는 담론의 장이 될 뿐더러 선인들의 도담을 나누는 매개였으리라는 생각이다.
'차인'지를 읽으면서 차인들의 성격을 살펴보니 다소 보수적이면서 격조 있고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면서 부추기는 여성성의 상생의 문화가 엿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차에 관한 한 전집으로 출간할 만한 충분한 분량의 출간된 목차를 보았다. 그간의 차인들이 마음을 곧추세워 지켜온 전통적인 차 문화의 정신은 지켜지고 보존되어 우리차문화의 실생활에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그와는 견해를 달리해 저는 차에 관해 꼭 좋은 이야기만을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비교적 오래된 마실 거리 가운데 차는 보급과정에서 불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어서인지 차를 설명하자면 불가의 인연을 좆아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차의 원산지가 인도 중국일 뿐 아니라 수행의 도구로도 음용했다.
커피가 이슬람포교를 위한 도구가 아니듯이 한국에서 차가 불교의 포교도구가 아님에도 그런 의구심이 들만큼 사찰중심의 차 문화에 의존하다 최근에는 높은 격조에 고급화 되어가는 다구와 법도에 매어 진화하지 못한 체 대중화에 실패한 것도 이러한 편견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격식을 갖춘 다구들이 있으나 바쁘게 사는 요즘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반드시 형식을 갖추고 예의를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속어를 빌리자면 청소년들의 눈에 비쳐질 수 있는 자칫 '꼰대의 문화'라는 의구심을 사전에 불식시킬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다. 커피전문점에서 녹차라떼를 찾는 청년들에게 녹차 발효차는 왜 화성인의 음료로 비쳐지고 있을까.
우리차를 손쉽게 마시고자 해도 막상 나부터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차라리 우리차가 좀 망가지더라도 퓨전화해서 누군가 돈도 벌고 문화적소비도 일으키는 꿈을 꿔본다. 차를 어떤 방식으로건 손쉽고 즐겁게 마실 수 있고 가까운 벗들과 긴장을 풀 수 있다면 일상생활 풍요로워 질 텐데 라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다도로 불리는 차의 예절도 몸에 익어 습관이 될 수 있을 터이니 미리 강조할 대목은 아닌 성 싶다.
차를 말하자면 늘 대칭점에서 커피이야기를 하게 된다. 오래된 풍경이지만 미군부대 PX를 드나들며 치마 밑에 감춰 나온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미국의 커피문화를 즐기며 우쭐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설탕과 프림을 듬뿍 넣은 커피는 녹차나 발효차에 비해 깊고 구수한 맛은 없었지만 인스탄트커피의 앗쌀한 맛은 새로운 마실 거리로 각광을 받기에 충분했다. 돌이켜 보건데 이는 이 땅에서 커피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같은 서구라도 영국인의 홍차 문화에서 미국인의 커피문화로의 변화되는 과정에서 커피전문점인 별다방 콩다방 이라는 프렌차이저의 파워게임에 밀린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앞마당을 내주고 말았다.
전 세계 자원전쟁의 우선순위가 차에서 커피로의 전환되면서 차의 자리를 중남미의 커피에 밀려 자리를 내준 데에 따른 우리의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 어떻게 어느 정도 규모의 변화가 일어났나. 등 느림의미학인 차는 바쁘게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커피의 스피드함에 패한 것일까. 차를 즐기기 위한 1인 다기세트를 비롯한 간편한 다구 펙 등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커피만큼이나 다양화하지 못했다.
차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은 결과적으로 차 문화를 못 만들기보다 제품만을 생산한 반면 커피를 들고 들어온 메이저급 회사들은 제품과 함께 다양한 커피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차의 대중화에 실패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기계화와 함께 제품을 단순화한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아포가토 카페모카 카라멜마끼아또 녹차라떼 등 다양한 커피의 진화에 비해 우리의 차는 다양한 마실거리로의 진화는 고사하고 변화도 못한 채 시간적인 여유와 품격을 가진 느림보의 미학이 되어버렸다.
나는 조부님에서 부친으로 이어지는 한약방의 넷째아들로 자랐으니 그저 이것저것 달여 마시는데 나름 이골이 난사람이다. 30여 년 전 신학교에서 신부수업을 받는 기숙사시절 녹차를 자주 마시다 밤새 잠을 못자고 여는 때는 속을 깎아 내는 쓰라림에 녹차를 피해 발효차인 홍차를 즐겨 마셨다. 향을 돋우고자 사과를 얇게 저며 함께 끓여 마셨는데 홍차 맛에 사과향이 깃든 차향이 너무 좋아 지금도 그렇게 마시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승합차의 통칭이 봉고차이듯이 각종 꽃을 비롯해 열매 잎 껍질 뿌리 등의 약과 음료로 마시는 마실 거리를 통칭 차라하는데. 그중에 맛과 효능이 뛰어나다는 차(茶)도 통칭의 차의 하나로 이해하는 겸손이 요구된다.
최근 몇 년은 원두커피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라별로 원두를 골라다 손수 콩을 볶 는일(로스팅)도 하고 갈아서 손흘림(헨드드립) 커피도 내려 마시면서 커피에 담긴 떫은맛 신맛 은은한 향을 누리기도하고 발효된 커피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향을 사치 아닌 사치를 떨어보기도 한다. 맛에 따른 인간들의 노력이 뒤따르지만 각자의 맛과 취향에 따라 선택 음용하는 차를 앞에 두고 우열을 가릴만한 잣대나 왕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지인들과 더불어 인사동에 소재한 일광이라는 전문찻집에 들러 차 대접을 받은 일이 있다. 젊은 여성이 잠시의 반가운 표정을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무표정한 집중력을 보이며 차 대접을 하는 그의 손놀림은 익숙함과 신기의 도를 넘어 섰음을 직감하게 했다. 지인들의 갖은 방담에도 무표정한 그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손놀림 마음다스림 까지를 훔쳐보았다. 출가해 불목한이로 오랜 세월을 수행해온 혜능을 연상키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여러 잔의 차를 마시면서도 차 맛의 변화를 못 느꼈다.
차인회의 '혜능' 이라 별명을 하나지어 드렸는데 그분의 마음에 누가되지 않았으면 한다. 귀한 차를 마시면서 사실은 '차인' 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으며 생소했다. '다도'에 관해서는 들어 익히 알았지만 다양한 차인모임들과 더불어 전통적인 차인문화가 방대한지 몰랐던 탓이다.
이는 참여기회가 없어 무관심했던 것일 테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차를 즐겨왔으나,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차 문화가 아직도 인사동 언저리에서, 몇몇의 모임 속에서만 향유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어서우리의 차 문화가 대중 속으로 한 발짝 더 나와 젊은이들도 차를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제 인연의 끈이 생긴 셈이니 이 좋은 차의 인연을 간직하고 챙겨볼 참이다.[이우송 살림문화재단 이사장, 사제]
[살림단상 원글보기] http://blog.daum.net/yiwoosong/13483403
e-mail : yiwoosong@daum.net
이우송 yiwoosong@daum.net
'차인'지를 읽으면서 차인들의 성격을 살펴보니 다소 보수적이면서 격조 있고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면서 부추기는 여성성의 상생의 문화가 엿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차에 관한 한 전집으로 출간할 만한 충분한 분량의 출간된 목차를 보았다. 그간의 차인들이 마음을 곧추세워 지켜온 전통적인 차 문화의 정신은 지켜지고 보존되어 우리차문화의 실생활에 스며들어야 할 것이다.
그와는 견해를 달리해 저는 차에 관해 꼭 좋은 이야기만을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비교적 오래된 마실 거리 가운데 차는 보급과정에서 불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어서인지 차를 설명하자면 불가의 인연을 좆아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차의 원산지가 인도 중국일 뿐 아니라 수행의 도구로도 음용했다.
커피가 이슬람포교를 위한 도구가 아니듯이 한국에서 차가 불교의 포교도구가 아님에도 그런 의구심이 들만큼 사찰중심의 차 문화에 의존하다 최근에는 높은 격조에 고급화 되어가는 다구와 법도에 매어 진화하지 못한 체 대중화에 실패한 것도 이러한 편견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격식을 갖춘 다구들이 있으나 바쁘게 사는 요즘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반드시 형식을 갖추고 예의를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속어를 빌리자면 청소년들의 눈에 비쳐질 수 있는 자칫 '꼰대의 문화'라는 의구심을 사전에 불식시킬 수 있으면 하는 생각이다. 커피전문점에서 녹차라떼를 찾는 청년들에게 녹차 발효차는 왜 화성인의 음료로 비쳐지고 있을까.
우리차를 손쉽게 마시고자 해도 막상 나부터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차라리 우리차가 좀 망가지더라도 퓨전화해서 누군가 돈도 벌고 문화적소비도 일으키는 꿈을 꿔본다. 차를 어떤 방식으로건 손쉽고 즐겁게 마실 수 있고 가까운 벗들과 긴장을 풀 수 있다면 일상생활 풍요로워 질 텐데 라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다도로 불리는 차의 예절도 몸에 익어 습관이 될 수 있을 터이니 미리 강조할 대목은 아닌 성 싶다.
차를 말하자면 늘 대칭점에서 커피이야기를 하게 된다. 오래된 풍경이지만 미군부대 PX를 드나들며 치마 밑에 감춰 나온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미국의 커피문화를 즐기며 우쭐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설탕과 프림을 듬뿍 넣은 커피는 녹차나 발효차에 비해 깊고 구수한 맛은 없었지만 인스탄트커피의 앗쌀한 맛은 새로운 마실 거리로 각광을 받기에 충분했다. 돌이켜 보건데 이는 이 땅에서 커피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같은 서구라도 영국인의 홍차 문화에서 미국인의 커피문화로의 변화되는 과정에서 커피전문점인 별다방 콩다방 이라는 프렌차이저의 파워게임에 밀린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앞마당을 내주고 말았다.
전 세계 자원전쟁의 우선순위가 차에서 커피로의 전환되면서 차의 자리를 중남미의 커피에 밀려 자리를 내준 데에 따른 우리의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 어떻게 어느 정도 규모의 변화가 일어났나. 등 느림의미학인 차는 바쁘게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커피의 스피드함에 패한 것일까. 차를 즐기기 위한 1인 다기세트를 비롯한 간편한 다구 펙 등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커피만큼이나 다양화하지 못했다.
차를 가지고 있는 대기업은 결과적으로 차 문화를 못 만들기보다 제품만을 생산한 반면 커피를 들고 들어온 메이저급 회사들은 제품과 함께 다양한 커피문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차의 대중화에 실패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기계화와 함께 제품을 단순화한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아포가토 카페모카 카라멜마끼아또 녹차라떼 등 다양한 커피의 진화에 비해 우리의 차는 다양한 마실거리로의 진화는 고사하고 변화도 못한 채 시간적인 여유와 품격을 가진 느림보의 미학이 되어버렸다.
나는 조부님에서 부친으로 이어지는 한약방의 넷째아들로 자랐으니 그저 이것저것 달여 마시는데 나름 이골이 난사람이다. 30여 년 전 신학교에서 신부수업을 받는 기숙사시절 녹차를 자주 마시다 밤새 잠을 못자고 여는 때는 속을 깎아 내는 쓰라림에 녹차를 피해 발효차인 홍차를 즐겨 마셨다. 향을 돋우고자 사과를 얇게 저며 함께 끓여 마셨는데 홍차 맛에 사과향이 깃든 차향이 너무 좋아 지금도 그렇게 마시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승합차의 통칭이 봉고차이듯이 각종 꽃을 비롯해 열매 잎 껍질 뿌리 등의 약과 음료로 마시는 마실 거리를 통칭 차라하는데. 그중에 맛과 효능이 뛰어나다는 차(茶)도 통칭의 차의 하나로 이해하는 겸손이 요구된다.
최근 몇 년은 원두커피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라별로 원두를 골라다 손수 콩을 볶 는일(로스팅)도 하고 갈아서 손흘림(헨드드립) 커피도 내려 마시면서 커피에 담긴 떫은맛 신맛 은은한 향을 누리기도하고 발효된 커피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향을 사치 아닌 사치를 떨어보기도 한다. 맛에 따른 인간들의 노력이 뒤따르지만 각자의 맛과 취향에 따라 선택 음용하는 차를 앞에 두고 우열을 가릴만한 잣대나 왕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지인들과 더불어 인사동에 소재한 일광이라는 전문찻집에 들러 차 대접을 받은 일이 있다. 젊은 여성이 잠시의 반가운 표정을 비치는가 싶더니 이내 무표정한 집중력을 보이며 차 대접을 하는 그의 손놀림은 익숙함과 신기의 도를 넘어 섰음을 직감하게 했다. 지인들의 갖은 방담에도 무표정한 그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눈빛과 손놀림 마음다스림 까지를 훔쳐보았다. 출가해 불목한이로 오랜 세월을 수행해온 혜능을 연상키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여러 잔의 차를 마시면서도 차 맛의 변화를 못 느꼈다.
차인회의 '혜능' 이라 별명을 하나지어 드렸는데 그분의 마음에 누가되지 않았으면 한다. 귀한 차를 마시면서 사실은 '차인' 이라는 표현을 처음 들으며 생소했다. '다도'에 관해서는 들어 익히 알았지만 다양한 차인모임들과 더불어 전통적인 차인문화가 방대한지 몰랐던 탓이다.
이는 참여기회가 없어 무관심했던 것일 테다. 이처럼 어렸을 때부터 차를 즐겨왔으나,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차 문화가 아직도 인사동 언저리에서, 몇몇의 모임 속에서만 향유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지. 어서우리의 차 문화가 대중 속으로 한 발짝 더 나와 젊은이들도 차를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이제 인연의 끈이 생긴 셈이니 이 좋은 차의 인연을 간직하고 챙겨볼 참이다.[이우송 살림문화재단 이사장,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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