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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미래, 숲. (2)
  • 기사등록 2012-12-03 15: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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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어깨를 맞대어 태양빛이 내리는 빈 공간을 찾아 가지를 뻗고 잎사귀들은 무성하여 불어오는 바람에 하염없이 흩날리며, 누구든지 쉽게 알아듣기도 힘든 대자연의 설법을 끊임없이 토로하고 있습니다.

짙은 산록을 따라 뱀처럼 돌아드는 강가에서 그야말로 편안하게 보이는 장소를 찾아 병색이 완연한 한 사나이가 고단한 육체를 접어 무작정 자리를 정하더니 밤낮으로 같은 동작을 되풀이 합니다.

낚시 대를 드리우고 마치 무한정의 세월도 아깝지 않은 듯이 앉아서 이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인간사의 대소다소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여 집니다.

사나이는 달리 준비한 식사꺼리도 변변치 않은 상태에서 솥에 물을 붓고 수시로 잡은 물고기들을 무작정 끓여 마시는 것으로 극적인 하루하루의 삶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사나이는 이미 스스로에게 남아있는 시한부의 세월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기로 작정을 하고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남은 한 조각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마지막의 순간을 고요히 기다리면서 비장한 마음을 추슬러 그저 눈앞에 보이는 자유를 만끽하는 최소한의 여유와 함께 마지막 투쟁의 순간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무려 4개월 동안의 상식을 넘어서 무모하게 보이기도 한 수행을 계속해 나가는 동안 사나이의 무의식 속에서 문득 삶의 자신감을 회복하였다는 실 날과 같은 희망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집을 나설 때는 간암 말기 환자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처절한 판정을 받아 도저히 삶의 불씨를 살릴 길이 없었으며, 인생의 절벽에 마주하여 마음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가족들의 짐만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무심코 자연의 품에 만신창이가 된 육체를 의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관념의 틀을 벗어나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보면, 인간은 살아 있으나 죽어 있으나 결과적으로 자연의 품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고독과 침묵으로 지새운 시간들을 뒤로하고 그 중 딱 하루를 선택하여 사나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종말을 선고한 의사를 찾아 다시 검사를 해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

지금쯤 세상을 버리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던 사람이 느닷없이 당당하게 나타나서 재검사를 해달라고 하는 동안에 의사는 참으로 황당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반신반의 하며 검사를 마친 의사에게 믿기지 않는 결과가 나타났는데, 그동안 사나이를 괴롭히며 육체를 좀먹어 들어가던 암세포들이 누군가에 의하여 완벽하게 괴멸이 되어 지극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상황이 벌어졌는지 의사도 원인을 모르고 사나이도 모를 뿐인데, 놀라운 결과를 일으킨 근본은 단지 숲이 우거진 자연 속에서 모든 욕망을 버려두고 자연이 주는 소박한 최소한의 음식만 먹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나이에게 닥친 현실은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임에 틀림 이 없었지만, 그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물고기 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이것이 특효약이라는 추측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을 정리하여 곰곰이 원인을 살펴본다면 흙에서 나온 우리의 생체가 대자연의 품속에 조화를 이루어 순응하는 동안 지고지순한 자연의 섭리가 아프고 힘든 곳을 포근하게 어루만져 혜량할 수 없는 은총을 내린 것으로 보여 집니다.

문득 사나이의 경험담을 토대로 되돌아 본 대자연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비심으로 끝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었던 것입니다.

숲과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아 내면서 스스로 뿌린 땀방울보다 몇 배나 되는 혜택을 상대에게 돌려주려 하다가도, 그 애정을 거두어 파괴를 거듭하는 패륜의 경우를 당하게 되면 반대로 홍수와 산사태와 가뭄 등의 끝없는 고통을 넘겨주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된 둘레 길은 우리의 국토를 무한정 확장시키고 보다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려는 지자체의 경쟁을 유발하여 먼 장래에는 예로부터 전래된 우리 강토가 금수강산이라는 수식어를 진실로 실감나게 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잘 가꾸어진 제주도의 사려니 숲길과 장흥의 우드랜드 등에 빠져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한층 정갈하게 순화시키고 육체의 고단함을 한때나마 풀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최근 근원적인 생명력의 상징인 심장의 박동과 일치하는 두 박자를 기본으로 하여 네 박자와 여덟 박자를 적절하게 가미한 한류의 급박한 리듬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강남스타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싸이의 말 춤은 그야말로 심장의 박동과 똑같은 두 박자를 기본으로 하는데 생체의 두 박자 리듬과 은연중 일체가 되는 순간에 극도의 흥분 상태가 이어지고 상상을 뛰어 넘는 쾌감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성간의 행위의 예술도 은연 중 두 박자에 기초하고 있으며, 단전호흡에서의 신공은 네 박자를 주로 하는데 기본은 두박자로 엄청난 상승력이 있어 때로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순간적인 해방감으로 몰고 가는 싸이를 비롯한 한류의 열풍도 대단하지만 인간의 무궁한 향기를 뿜어 대대손손이 이어가며 잘 살아가는 지구촌을 꿈꾸는 김장훈의 숲을 가꾸는 운동도 가히 세계를 놀라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중국의 사막화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짐에 따라 그곳에서 일어나는 황사는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까지 날아가는 현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하여 정작 중국인이 나서야 하는 마당에 김 장훈을 비롯한 한국인들의 열성이 오히려 대단하게 보여 집니다.

미래의 세계를 책임질 수도 있는 깨어있는 한민족의 저력과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으로 아프리카나 후진국에 우물을 파고 학교를 세우고 봉사활동을 펼치는 우리의 젊은 피가 세계를 누비고 있으니 참으로 민족의 장래가 촉망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1979년에 중국의 상하이에서 태어나 자오통 대학교를 졸업하고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잘 조성된 노르웨이 숲에 매료되어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여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숲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하여 중국정부에 ’에너지 숲 프로젝트‘를 제안하던 숲의 전령사인 ’위지안‘ 교수 또한 미래를 향한 자신의 메시지를 유감없이 발휘 하였습니다.

최연소의 박사로 촉망 받던 위지안 교수는 2009년 10월 갑작스럽게 말기 암 판정을 받고 그야말로 지구를 위한 그녀의 활약을 마음껏 펼치려던 순간에 안타깝게도 처절하게 찾아드는 좌절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위지안 교수의 육체는 자연의 무상한 이법 앞에 덧없이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향기를 발산하여 찬란한 의지를 관철하려고 가녀린 목숨을 촛불처럼 태워가면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는 저서를 남겨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강렬한 의지는 세계인의 가슴에 불길을 일으키고 중국에 나무심기 열풍을 몰고 왔으며,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는 간곡한 그녀의 뜻을 확실하게 전달하였습니다.

숲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인류는 최근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인한 지구촌의 몸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하여 탄소배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일환으로 교토의정서를 채택하여 나름대로 아낌없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사이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게 되면 그것이 현금과도 같은 재화로써 통용이 되고,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은 다투어 외국의 광활한 토지를 임대하여 숲 가꾸기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철강신화를 이루어 세계를 놀라게 하였던 포스코는 우루과이에 진출하여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아낌없는 투자를 통하여 드넓은 숲을 가꾸어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대한 저력을 갖춘 우리의 선진화된 의식들은 지구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참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일으킬 것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진실로 가슴이 아프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우리민족의 자가당착이나 다름없는 황폐한 북한의 산천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답답하여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이따금 사진으로만 보는 압록강과 두만강 변에서 바라보는 북한 땅의 야산은 그야말로 헐벗은 상태에서 급경사의 꼭대기에도 얼마나 되는 노력과 땀방울을 쏟아 내었는지는 몰라도 위험스러울 정도의 모습으로 첩첩하게 개간된 전답이 아스라이 보이는 것입니다.

물론 한 톨의 식량이라도 생산해 내야 하는 북한 땅의 절박함이 느껴지며 처참한 현실 앞에 가슴이 저려오는 안타까움이 북받치기도 합니다.

탄소배출권이 현금과도 같은 효용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확보하려는 우리의 기업들이 수없이 많다면, 굳이 멀리 외국에까지 나가 숲 가꾸기 사업을 하기보다는 헐벗은 북한 땅을 활용한다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시바삐 남북 간의 체제와 이념의 괴리를 극복하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절차상의 문제를 해결하여 헐벗은 산야를 구원하는 길을 다방면으로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숲의 정령들과 인간의 영혼이 스스로 조화롭게 삶을 꾸려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실종된 대지가 우리의 반쪽 국토의 실상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민족과 지구촌의 평화와 미래를 논하는 것은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북한 땅에 나무를 심는 것은 헐벗은 대지에 옷을 입히고 거듭되는 자연재해로 신음하는 동족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심폐소생술이 될 것이며, 굳게 닫힌 북녘의 폐쇄된 철문을 하루라도 빨리 열어 상대방을 말살하려는 극단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고통으로 얼룩진 사람들을 자유의 품으로 인도하는 평화와 희망의 싹을 키워, 민족의 무궁한 부흥과 공존공생의 장을 열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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