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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길 백리, 말빚에 시름을 털고.
  • 기사등록 2012-10-15 16: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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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람의 생활이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바쁘고 고단하여 앞과 뒤가 모호하고 허와 실이 바뀌는 와중에서도 그저 손사래 나 치는 정도로 거침없이 스치는 차창의 난잡한 풍경처럼 허둥대기도 합니다.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상념들과 정돈 되지 않은 미련들로 무력감에 빠져 들면서도,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어 앞길을 향하는 발걸음에 힘을 보태어 날마다의 새로움으로 풋풋한 희망의 날개를 펼치기도 합니다.

2012. 10. 13. 토요일 목포여객선터미널의 이층에는 아침부터 광주, 해남, 영암, 나주등지에서 무언가 하나의 뜻을 품고 삼삼오오 모여드는 사람들이 오랜만의 해후로 격의 없이 가슴을 맞대어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커피 잔을 기울이며 조용한 회합을 위하여 묵묵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무더운 여름을 극복한 뒤의 끝자락이나 격렬 하였던 태풍을 견뎌낸 인고의 아픔을 넘어, 오곡백과가 익어갈 무렵 고즈넉하게 깊어가는 가을날 소리 소문 없이 계속 되어 왔습니다.

아마 1995년 가을로 알고 있는데 목포시문학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깊으신 분들과 뜻을 같이 하여 목포에서 인근의 달리도, 율도, 외달도등을 순차로 항해하는 신진페리호 선상에서 뱃길 백리를 오가는 하루 동안의 여정을 통하여, 시와 풍류를 교류하거나 각각의 기량을 뽐내기도 하고, 가슴에서부터 울려나오는 흥취를 북돋아 아낌없는 정감을 나누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 행사의 저변에는 목포시문학회와 신진페리호를 운영하면서,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의 시민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범죄예방협의회의 원로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김상근 회장님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깊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우여곡절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들은 염화시중의 미소로 번지기도 하며, 영원의 속삭임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따라 물결치는 파도에 묻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신진페리호에 조용하게 승선하여 3층에 있는 공간에 의자를 놓고 자리를 잡은 뒤 출발시간인 10:30경이 되자 육지를 향하여 기나긴 뱃고동을 뒤로하고 배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져 갑니다.

제1부 선상에서의 사회는 정 인태 시인이 맡아 주었습니다.

김 상근 회장님의 “문학은 꽃을 가꾸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몫”이라는 내용의 인사말이 있은 뒤 전 울림 선생님의 색소폰 연주가 시작 되었습니다.

멀어져 가는 목포항을 뒤로하고 모두가 심금을 울리는 색소폰의 감미로운 음향에 흠뻑 취해 지그시 눈을 감고 한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바다 위를 훨훨 날아오르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의 연주음악인 ‘고엽(가을낙엽)’이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앙코르가 쏟아지면서 분위기는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었는데 때맞추어 머리 위로는 두 마리의 학이 날개를 벌린 형국의 목포대교가 웅장한 모습을 뒤로하며 고요히 밀려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의 색소폰 연주음악이 긴 꼬리를 남기며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를 타고 멀리 멀리 떠나가는 동안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인들의 낭송이 오뉴월 높새바람처럼 휘돌아 가곤 합니다.

맨 처음 콧수염을 바람에 날리던 박달재 시인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생뚱맞게 빗을 내어 머리를 빗고 “하늘보다 푸른 바다/ 구름 따라 떠나가는 배/ 문우들이여 섬으로 가자./ 오늘은 어데로 가나/ 중략/ 설렘에 가슴 미어지는 사랑의 섬/ 아! 외달도/ 오늘은 외달도로 간다/ 중략/ 오늘 하루를 / 노래하고 춤을 추자.”고 하더니 원고에도 없는 “강남 스타일로 놀아버리자./ 미쳐버리자”고 하여 좌중은 폭소가 터졌습니다.

곧 이어 목포문인협회 총무를 맡고 있는 고미선 시인께서 “내안의 연 방죽”이라는 제목으로 “연잎 차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삼킬까 말까 머뭇거리다/ 꿀꺽 마신다/ 목구멍 타고 유유히 흐르던 연잎 차/ 마음 갈아엎고 연 방죽 하나 만든다/ 중략/ 저 깊은 곳에서 / 뽀글뽀글 연꽃 봉오리/ 은은한 향기 피우며/ 소담스럽게 피어난다.”며 청아하게 읊조립니다.

이어서 김상근 회장의 “나뭇잎 스치는 바람에도/ 저만치 밀려서 다시 찾는/ 칠성 풀 잠자리 날개 짓으로/ 중략 / 열 입곱 번째/ 해 집고 찾아온/ 다시 그 자리 외달도./ 중략/ 세월도 사랑이듯 훌쩍 넘는 것/ 오늘은 여기에서/ 숨겨둔 그리움을 이야기 하리라./ 중략/ 하늘을 보면 / 바다가 하늘인데/ 잃어도 잃을 것이 없겠구나/ 제 몫을 다- 하고/ 혹여/ 시 한줄 생각나면/ 이곳에 곱게 묻어 두자/ 해마다/ 다음해/ 또 하나의 시 한 줄을 위하여 - ”라고 격정을 토로합니다.

김영천 시인께서는 “2010년 선상시 낭송회”라는 제목으로 “태풍의 언저리에서/ 배를 타 보셨나요/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속에/ 시야는 흐려지고/ 바람만 주인처럼 횡행하는/ 바다를 걸어보셨나요/ 중략/ 벽력의 우뢰 속에/ 오래 오래/ 지나간 삶을 반추해 보셨나요/중략/ 온몸으로 젖으며/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나니/ 용서 하소서/ 차마 겸손해지는 나를/ 조금씩 조금씩 당신을 향해/ 놓아 보냅니다.”고 잔잔한 포효를 합니다.

새삼스레 2010년도 선상시 낭송회가 다시 생각이 나는데 어찌나 많은 비바람이 치던지 수영도 하지 못하는 김 영천 시인께서는 차라리 배가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고 소회 하였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코멘트는 “누가 우리를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멋과 낭만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우리처럼 한곳에 미치다 싶은 어느 조사가 바닷가 갯바위에서 폭풍우를 맞으며 낚시를 하다 우리가 타고 가는 배에서 울리는 색소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하여 서로 간에 박장대소를 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한마디로 못 말리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에는 목포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기호 선생님의 “가을길”을 바쁜 일정에 참석하지 못한 관계로 취산 조 용백 선생님의 사모님이신 정미라 시인께서 대신 낭송 하였습니다.

“키 큰 나무들/ 외로운 숲길/ 바람도/ 옷깃 세우며 돌아가는 길/ 중략/ 뒤 돌아 보면/ 발자국만 바스락 바스락/ 따라오는 길.”

다음에는 독감예방주사를 맞아 밤새내 앓았는데 하마터면 참석하지 못할 뻔 했다는 이순희 시인께서 “깨꽃의 지조”라는 제목으로 “설움이 흐르는 젖은 고랑 사이로/ 아픈 가슴을 끌며/ 햇살에 맡기는 저 풋잎 따라/ 어깨춤만 추오/ 온몸에 깨꽃의 하얀 종을 흔들면서”라 하였습니다.

멀고도 먼 울산에서 어젯밤을 달려온 김 남복 시인은 “온통 물고기 비늘로 덮여 있는/ 이 섬과 저 섬의 사이/ 여기 거대한 물고기가 누워 있다./ 담배를 머금고 있는 어부의 입가에도/ 꼼꼼하게 손질하는 그물망 속에도” 라는 내용으로 “달리도”를 애써 노래하였습니다.

항상 사회만 보던 전 경란 시인이 객석에 앉아 있다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당신은 나의 눈을 멀게 하였습니다/ 겨우 한치 앞 밖에 볼 수 없도록/ 뿌우연 그림자만이/ 희미하게 다가와 내 앞에 섰을 때/ 그때야 그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중략/ 그러다 당신은/ 내 가슴 깊숙이 들어와/ 자고 있는 나를 깨웠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세상 속으로...”라고 “안개”를 피력하였습니다.

전남문인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오승희 시인께서는 부군과 함께 참석하여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가을 속으로 검정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곱게 차려 입은 가을은/ 미리 준비한 길을 내며/ 아양을 떨면서 수줍은 듯 안겨 왔다/ 중략/ 저만큼 밀린 낙엽은/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바퀴자국 새기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한참이나 거두어야 했다”고 “가을 연인”을 노래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옥쟁반에 은구슬이 구르는 듯한 맑은 목소리의 주인공이자시 낭송으로 명성을 얻은 박 행자 시인이 “기대고 싶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나의 슬픈 아픔까지 어루만지며/ 내게 사랑을 알게 해 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사람/ 중략 / 그런 사람을 만났습니다”고 하여 참석한 모든 남성들이 한번쯤은 그 주인공이 자신이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품게도 하였습니다.

목포시문학회장을 거쳐 목포문인협회장을 역임하였던 고 재복 시인께서 “단풍나무는 바람기가 있는 나무다/ 중략/ 단풍철의 현란한 교태는 그렇다 치자/ 가을이라는 계절은 / 먼데 있는 사람까지도 그리운 법이니까/ 중략/ 비오는 날에는 더 노골적으로/ 중략/ 지나가는 사내들에게 엉켜/ 얼굴을 부벼 댄다.”고 “단풍나무”를 의인화 하였습니다.

영암문학회 회원이자 시향문학회원인 김 영초 시인이 자신은 즐거운 날에는 시를 쓰지 않고 마음이 아파 오는 날에만 시를 쓴다고 하면서 “궂은 날이면”이라는 제목의 자작시를 낭송 하였습니다.

다음에는 김 혜경 시인께서 “건물들 사이로 조각난 햇빛이/ 조급하게 자리를 바꾸는 도시 한 켠/ 그늘보다 어두운 몸에/ 꽃이 피었다./ 중략/ 가을도 깊어가는 저녁 답. 무딘 코도 활짝 열게 하는/ 암수 한 몸의 서툰 사랑/ 꽃이 피었다”고 다른 꽃과는 달리 가을에 잎사귀 아래 백색으로 하얗게 숨어 피어 고귀한 향내를 풍기는 “은목서”를 소개 하였습니다.

쉬지 않고 달려온 시인들의 가슴앓이에 취해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의 일시 목적지인 “외달도”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음향기기를 챙기려는 전 울림 선생님의 손길이 바빠지고 외달도는 양팔을 벌리고 해마다 찾아오는 손님을 맞으려고 넓은 가슴을 활짝펼치고 서서히 다가섭니다.

우리의 뱃길 백리는 잠시 멈추어 설 뿐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머 섞인 농담을 건네면 미소를 잃치 않던 여사장님이 살찐 닭을 삶아 내면서 반갑게 맞아 줄 것입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어느 여름날 바닷가에 앉아 동이 터오를 때까지 술을 마시다가 민박집인 ‘비파정’ 마당에 있던 한말짜리 막걸리 통속의 걸쭉하게 보이는 액체가 얼마나 탐이 나던지, 체면불구하고 청하여 송림사이 부서지는 아침 햇발을 쳐다보며 또 한잔의 막걸리를 진하게 걸치던 백사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름 손님들이 부산하게 떠들다가 이제는 떠나고 없는 수영장 옆 잠시 쉬고 있는 공연장에 우리들의 향연을 또다시 펼쳐 보일 것입니다.

제2부에서는 저와 박 행자 시인이 사회를 맡아, 수도 없는 말빚을 쏟아 내면서 취흥을 북돋우어 모든 사람들의 시름을 털어볼 생각입니다.

전 울림 선생님은 시 낭송의 배경음악을 맞추거나 때로는 흥겨운 강남스타일의 음악을 맞추느라 분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선생님의 손톱이 손상되어 한곡을 연주하는데 약 6만 번의 진동이 필요하면서도 한사람의 연주로 여러 사람의 합주를 듣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알함브라’ 궁전은, 아쉽게도 올해는 그 현란한 음률을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모발 하나마저도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지는 엄숙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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