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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인들이 가꾸는 문학 세상 “참국화시인학교” - 생활과 마주친 적 없던 새로운 원시의 숲길
  • 기사등록 2012-08-05 12: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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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보성]문덕은 문학의 시원(始原)이다.

문덕(文德)은 어쩌면 유일한 자연이고 싶은 지도 모른다. 사람과 꽃들과 새들, 그리고 품안을 오롯이 빠져나가는 길들은 광주로도 순천으로도 그리하여 서울로도 가고 저 우주로도 가고, 또 오는 길이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들이 문덕에 모여 시(詩)를 꿈꾸었다. 전국에서 모여 든 44명의 어린시인들은 옹기종기 삼삼오오 떠들고 재잘거린다. 마치 웃고 까불고 무질서한 것이야말로 최상의 자연이라는 듯이.

「참국화 시인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 주관 하에 한국문인협회와 보성문인협회의 후원으로 올해 첫 회를 맞았다.

시인학교장 이영춘(춘천) 시인의 ‘독서와 글쓰기’를 비롯해서 이상미(부산) 시인의 ‘논술, 시낭송과 시 퍼포먼스’, 그리고 서정윤(대구) 시인의 ‘디베이트 토론’, 환경캠프에 조용환, 김영래 시인이 참여해 3일간의 빠듯한 일정이 진행되었다.
 
시(詩)는 언어가 아닌 실상(實相)이다.

주암댐상수원(住岩댐上水源)의 오염실태를 체험하며 수원지를 다녀왔다. 생활과 마주친 적 없던 새로운 원시의 숲길이다.

어린시인들은 느릿느릿 걸었다. 물수제비를 날리고 첫 대면한 풀의 모가지를 꺾고, 친구의 웃는 얼굴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면서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진저리치는 어린 시인도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아이, 지저분해. 만지기 싫어요.

푸념 섞인 어린시인들은 익숙하지가 않았다. 주암댐상수원(住岩댐上水源)의 물은 식수원이며 농업용수로도 쓰이는 다목적댐이라는 한국수자원공사 주암댐 관리단장 김관중 님의 ‘우리 지역 물 이야기’는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물’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강의였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의 오랜 친구였던 영산강유역환경청장 이재현 님의 ‘아프리카에서 찾은 행복과 나눔의 가치’는 어린시인들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하였다.

친구를 만나는 소중한 인연, 온갖 재해와 온난화로 인한 지구적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아프리카의 실상과 그들의 가난, 배고픔, 정치적 불안, 동족상잔의 악순환 속에서 살아야 하는 아프리카를 인식하는 일은 특별하였다.
 
"어둔 길을 눈을 뜨고 걸어가다."

환경인식은 프로그램을 바꾸는 진보를 보였다. 숲과 마을공동체가 엄연한 현장에서 불을 피우는 일은 환경을 모토로 한 이번 시인학교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생각을 어린시인들과 시인들은 공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프로그램의 캠프파이어를 변경하여 저녁 산책을 나섰다. 깜깜한 숲길이었다. 깜깜한 나무와 깜깜한 풀벌레소리, 깜깜한 발소리, 숨소리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이영춘 교장선생님의 노래부터 시작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다. 춤추고 노래하고 키득거리고 왁자지껄 떠들고 박수치고…… 즐거운 한 마당이었지만 제자리에서 꿈쩍 않는, 노는 데 서툰 어린시인들이 많았다. 그런 모습에서 오늘 현장교육의 부재를 절감할 뿐이다.
 
"시인을 흉내하여 시에 이르다."

이상미 시인의 지도를 따라 윤동주 시인과 박목월 시인의 시(詩)에 들어있는 역할을 세분하였다. 이를테면 화자와 청자, 그리고 객관적 참여자인 독자가 시의 전면에 동시에 나타나는 퍼포먼스이다.

어린시인들은 각자 맡은 캐릭터의 시 구절을 암송하고 이해하여야 했다. 웃고 떠들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이영춘 시인의 강의에 따라 어린시인들은 즉각 시를 써내야했다. 사물을 인식하고 상상력이 어떻게 발휘되는 것인지 깨닫는 과정은 시 문장의 언어적 완결성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따라서 독서의 중요함은 당연하였다.
 
‘누에는 뽕을 먹고 실을 뽑아낸다.’

그러므로 “시인은 책을 먹고 시를 뽑아낸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어떠한 창조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전을 읽고 시를 외우고 역사의 위인들을 통한 영향은 필연적인 것이다.
 
"시(詩)를 주워 시(詩)를 걸어두고 떠나다."

시인학교의 근본 취지는 환경과 생활의 밀접함이 어떻게 문학적 상상력으로 구현되는지? 그러므로 시(詩)를 구하는 일은 환경을 구하는 일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시인들은 강론하였다.
 
어린시인들의 기억에서 가장 오래 남을 만한 기억은 무얼까?

그것은 「허공의 딸꾹질」이 아닐까. 조용환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한 「허공의 딸꾹질」은 시인이 주암댐 주변청소를 하며 모은 쓰레기를 ‘작은 농부’ 이승렬 씨와 함께 전위적 설치를 하며 쓴 작품이라고 한다.
 
어린시인들은 보성군 문덕면 소재의 생활관 앞에서 주암댐상수원에서 주워 모아온 쓰레기를 공중에 매달았다. 무더운 여름날은 어린시인들을 힘들게 하였다.

그러나 조막만 한 손에서부터 제법 한 세상을 책임을 질 만한 큰 손들이 모여 「허공의 딸꾹질」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모두 땀으로 흠씬 젖어들었으나 참담한 설치를 마치고 돌아보는 어린시인들은 보람과 막중한 부담에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 여기저기서 달려오신 부모님들께서 지켜보는 가운데 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어색하고, 외었던 구절을 까먹고, 너무나 진지해서 웃음이 나고, 징그러울 만큼 잘 하고, 쏟아지는 박수소리에 또 얼굴 붉어지고……

간소한 졸업식이 진행되고 어린시인들은 떠났다. 둘러보니 「허공의 딸꾹질」만이 뙤약볕에 눈부시다. 참다운 시는 그야말로 쓰여지지 않는다는 오랜 문학담론이 떠오른다.

쓰레기들은 허공에서 어느 바다를 헤엄쳐 갈 것이고, 어린시인들의 꿈은 다시 이곳 시인학교의 문덕으로 향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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