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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동 마음의 안식처, 섬.
  • 기사등록 2012-01-09 11:30:37
  • 수정 2014-12-04 16: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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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으면서 만물에서 묻어나는 수만 가지의 음영을 거울처럼 받아 주관적으로 걸러내어 덧없이 피어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백지장에 바늘로 조그만 구멍을 뚫어놓고 그곳에다 눈을 최대한 가까이 대고 세상을 바라보면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세상이 보이고도 남을 것입니다.

우리의 조그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상상의 나래를 조금만 펼치다보면 삼라만상이 모두 비추어 보일뿐 아니라 마음은 한없이 유유자적하게 될 것입니다.

방향을 뒤집어 우주에서 백지장의 바늘구멍이나 사람의 눈을 바라본다면 그야말로 티끌중의 티끌로 그 형체조차 가늠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만큼 마음의 눈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광대한 공간의 자연적인 섭리에 대한 실상과 허상이 다르게 투영될 것입니다.

사람이나 존재의 개체들이 누구나 처음 대면을 하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하여 자신의 장점과 호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얼마 정도는 은근하게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 의식으로 친절을 베풀다 정을 나누기도 하고 급기야는 지극한 사랑을 꾸리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상대방에 대하여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는 천적의 경우에나 있음직한 일이고 대개의 경우는 상대방과의 짧은 순간일지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곤 합니다.

시간이 경과하고 접촉의 순간이 잦아지면서 점점 더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하여 지고지순한 이상에 다다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존의 논리나 자신만의 이익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이견이 발생하고 나중에는 상당한 거부감과 함께 적대감이 자라기도 합니다.

내가 상대방에 대하여 쏟았던 열과 성이 새삼스레 견주어지고 내가 베풀었던 진실이 무색해지면서, 상대방이 내게 저지른 아쉬움과 배신의 끝자락은 커져만 가고 손익의 분기점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릴 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자연이나 짐승이나 미물들로부터는 크게 상처 받을 일이 별로 없을 것인데, 똑같은 사람들로 부터는 수도 없는 마음의 질곡과 상처를 받아내면서 때로 번민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심성이 착하고 세상에 대하여 참으로 좋은 마음을 가졌던 사람일수록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 깊어지면, 그 상처 또한 크게 남아 한층 더 견디기가 힘들어질 것입니다.

과연 험악한 세상에 인간을 사랑해도 되는 것인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원수까지도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인간성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악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온갖 영화를 누리는 현상에 직면하면서 과연 절대자께서는 선악을 분별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가는 지경까지 논리가 비약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신체적인 상황이 전성기를 지나 무언가 전반적으로 주춤해지면서 어찌 보면 쇠퇴의 초창기인 50대에 이르는 사람들일수록 그만큼 사회의 정의가 혼탁한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느껴지다 보면, 무언가 의미를 새기는 사람들의 의식은 자꾸만 괴로움으로 힘들어지고, 자신만이 방랑자가 되어 그들로부터 계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가면서, 나아가 사회를 병들어 가게 하는 극화현상의 초기 증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달된 자본주의가 재물에 대한 관리 방식에 있어 선량한 사람일수록 간악한 자의 속임수에 의하여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실패한 인생이 늘어만 가거나, 자신이 필요할 때 한없는 도움을 받다가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으면 여지없이 상대방의 선심을 짓밟고 외면하는 현상이 자꾸만 발생하게 된다면, 차라리 짐승에게 정을 주었더라면 배신만은 당하지 않았을 터인데 사람에게 정을 주어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도 크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갈대처럼 연약한 마음의 인간들이 현실로 이러한 경우를 당하였다는 생각이 깊어만 간다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좌표와 가치관의 혼돈으로 깊은 수렁에 빠지면서 삶의 무기력에 의하여 표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허무의 순간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육지와는 단절이 된 외딴섬을 찾게 되는데, 마치 생의 마지막에 영혼이 이승을 떠나가는 순간에 마주한다는 요단강이나 극락의 강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위의 강들은 망각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며, 실존의 세상에서 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떠가는 배(허주:虛舟)로 해탈의 순간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섬에 이르는 길은 어차피 육지와의 인연이 단절되어 있던 것을 배를 통하여 이어가는데, 뱃전을 때리는 파도에 지나간 날들의 아픈 추억을 어느 정도는 씻어내며,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간의 상념에 빠져들다가 마침내 섬이라는 뭍에 접안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야말로 새로운 땅과 환경에 마주하면서 떠나온 세계와는 바닷물로 완벽하게 차단이 된 현실 등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정신조차 말끔해지는 것입니다.

그곳에 자리한 산천을 바라보고 시골집이나 논밭을 보게 되면서부터 새롭게 솟아나는 삶의 욕구와 희망으로 정신의 건강이 번쩍 눈을 뜨게 될지도 모릅니다.

문득 지나간 날들의 아픔과 시련은 그 흔적이 옅어져 가며, 조그만 현상에 대해서도 새롭게 소중함이 느껴지면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감이 생기기도 하고 엄청나게 짓누르던 정신의 아픔조차 순간적으로 잊어 치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섬은 인간에게 있어 잠시나마 의식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마음에 병이 깊어지면 수시로 섬을 찾아 며칠간의 자유를 만끽하여 번뇌와 망상의 티끌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부대끼다 한주일의 기다림을 통하여 섬에 이르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은연 중 충만한 평화가 가슴에 자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형편이 허락한다면 아예 섬에 생활의 공간을 마련하여 놓고 수시로 그 정취에 묻혀 세상사를 잊어버린 채 순간의 자유를 만끽하는 기쁨을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섬에 가면 육지에서 접해보지 못하였던 생물들과 다양한 모습의 풍광들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데,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광대한 공간 이곳저곳에 생각지도 않았던 흔적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그 땅에 대를 이루어 살았던 이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펼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설화들의 근저를 차근차근 찾다 보면 백사장에서 조개껍질을 줍는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미움도 원망도 다툼도 모두가 간단없이 철석이는 파도의 읊조림에 무심코 쓸려갈 것입니다.

신안군 안좌도에 가보면 부속 섬으로 박지도와 반월도가 있고, 그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중 노두’의 전설이 구전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박지도에 있던 중이 다리도 없는 건너편 반월도에 있던 비구니를 사랑하게 된 나머지 서로 만나 애틋한 정을 나누기 위하여 매일 같이 돌을 날라 다리를 만들어 가는데, 건너편에 있던 비구니가 마침내 건너편 절간에서 수행하는 중의 심경을 알아채고는 자신도 서둘러 밤낮으로 돌을 날라다 반대편에서부터 다리를 만들어 오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몇 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무상한 세월이 흘러가버린 어느 날 드디어 두 사람이 바닷가 한가운데의 불완전한 돌다리에서 만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이, 잠간 동안 바닷물이 밀려들어 오면서 수년간의 그리움을 이기지 못한 영원한 포옹은 풀리지 않는 채로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슬픈 내용의 전설입니다.

마치 이들의 아픈 마음이 현실로 드러난 듯 안좌면의 본도와 박지도, 반월도 사이에는 약 3킬로미터에 달하는 바다 한가운데를 관통하면서 두 개의 섬을 잇는 일명 “천사의 다리”라 하는 인조 목으로 이루어진 기나긴 구조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중간 중간에 휴식의 공간이 적절하게 배분이 되어 있으며, 불어오는 바닷바람이나 밀려들었다 밀려 나가는 바닷물의 향연 또한 일품이고, 드넓은 갯벌에 펼쳐지는 감태를 비롯한 해조류의 서식지나 바다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발아래서 펼쳐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향연일지도 모릅니다.

야간에는 다리를 따라 홍등가를 연상케 하는 은은한 미등으로 불을 밝히고 그야말로 사람의 기분을 한층 더 상향시켜 맥주나 소주의 맛을 더하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간 중간에 설치된 휴식 공간에 텐트를 치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가져온 음식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기도 하고, 약간의 짬을 내어 밀려드는 바닷물에 낚시 줄을 던져 고기를 낚아 그 자리에서 회를 떠서 안주로 삼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의 취기가 올라 기타 반주에 맞추어 지나간 날들의 유행가를 합창으로 부르다 보면 파도는 반주를 맞추어 철석거리고 달빛은 교교히 춤을 추기도 합니다.

이처럼 섬은 인간에게 아무런 욕심도 내지 않고 단지 땀과 근심만을 빼앗아 갈 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선물로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번잡한 일상을 탈피하여 무심코 섬에 이르러, 거친 세파의 모든 근심과 번뇌의 망상들을 잠시나마 접어 두고, 참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다보는 가뿐한 여유가 그리워지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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