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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은 떨어지고
  • 기사등록 2011-05-26 09:50:56
  • 수정 2014-12-04 17: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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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 땅거미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산책길을 나서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 나뭇가지 틈새에서 날개를 파닥이는 작은 파열음, 동쪽하늘에 펼쳐지는 빨간 노을은 새로운 날의 신선함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발밑에 빈틈없이 깔린 풀잎들은 그 마디마다 밤새워 떠도는 이슬을 붙잡아 방울방울 머금어 영롱한 빛을 발하여 반가이 맞이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등에 맑고 깨끗한 생명수를 간간이 축복 하듯 뿌려 주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철쭉들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한껏 어우러져 나름대로의 요염한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습니다.

솔잎을 스치는 청량한 바람소리에 문득 고개 돌려 보면 비탈진 언덕이나 바위틈이나 가리지 않고 긴 밤을 지새운 수도승처럼 묵언으로 장중한 나무가 서 있는데 신령스러울 정도로 굳건한 정기를 방사하고 있습니다.

때 마침 가슴을 후비며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시원한 기운은 점차 머리끝까지 차올라 그지없이 맑고 평온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멀리 보이던 산그늘에 태양의 혜택이 정도껏 내리면 그 윤곽을 또렷이 하면서 급기야는 비탈에 선 나무들과 산허리를 감싸고 그 아래로 나열된 수없는 지붕들의 행렬이 인상 깊어 집니다.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부산한 모습들이 느껴지고, 도로에는 일찍부터 바쁜 차량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집니다.

그동안 무심코 보아 넘겼던 산곡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초목들의 우렁찬 함성들과 태양의 강한 햇살이 꽂혀 생동하는 삶의 메아리를 건너편으로 마냥 쏘아 보냅니다.

산뜻하게 시작되는 새로운 날의 아침은 은연중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면서 찬란한 빛으로 하여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꽃잎을 보면 그다지 마음이 상쾌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화려함의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리고 떨어졌으면 미련도 없을 것이거니와 남아 있는 채색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은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무릇 이 세상에 살아있는 생명의 축복이 넘친다 하지만 결국에는 삶의 한 자락을 붙잡고 용기 있게 생을 향유하는 개체에게만 찬란한 아침이 허락되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에는 밤사이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에 보도 매체들이 다투어 소식을 전하는데 그 중에는 모든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이따금 꽃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거나 그 발자취가 온 세상에 가득하여 존경스런 사람들이 지구촌의 행렬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향하여 긴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은 옹달샘에 번지는 파문처럼 우리를 무척 놀라게 합니다.

특히나 아직은 살아서 이 세상에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생의 끈을 던지고 이승에서의 고통을 단절하였다는 소식은 남아 있는 주변 사람들의 가슴을 한층 더 답답하게 만듭니다.

2011. 5. 23일에는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듯 보이는 20대의 꽃 다운 여인이 살고 있던 고층 집에서 뛰어내려 앞길이 창창한 인생을 스스로 마감하였다는 소식이 신문 지상을 가득 채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수없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혼자서는 살수 없는 공동의 공간에서 상호간에 교차하는 인연의 실타래가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고, 얽히기도 하고, 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부딪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는 좋은 인연도 나쁜 인연도 있겠지만, 만난을 물리치고 모두 좋은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쏟아내는 노력에 의하여 실제로 좋은 모습으로 엮어 갈수도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온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던 전직 대통령의 서거 소식과 똑 같은 날의 2주기 추모식과 비슷한 시간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최근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자살 율이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았으며, 전국에서 약 44분에 1명꼴, 하루에 33명의 귀중한 생명의 꽃이 지고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연은 지상의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억천만겁의 업보가 쌓여야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이생에 오는 것은 스스로의 의지도 반영이 되겠지만,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인연의 법칙과 한평생 쌓아가는 업보에 의하여 한 단계 승화된 세상으로 가게 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우리들 가슴을 안타깝게 하는 소식들이 너무도 많았는데 과연 길 잃은 영혼들이 편안하게 쉬어가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불행하게 세상을 버린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일일이 나열하여 새롭게 들추어 낼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분들의 아픔을 통하여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반성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불행이 계속하여 반복 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일정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절망감에 흔들리던 사람들에게 수시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던 행복의 전도사로 자처하던 분의 소식은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이 쉬운 것 같아도 인간과의 복합적인 관계들과 예측하지 못한 주변 여건들로 인하여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래서 어느 대중 가수는 인생살이가 고추보다 맵다고 표현 하였으며, 그 가사에 공감하여 사람들이 비록 고추보다 매운 순간을 경험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즐거이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추보다도 매서운 현실을 노래로 달래면서 뼈를 깎아내리는 듯한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묘수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수도 없는 주변국의 침략을 장구한 세월동안 받아 왔습니다.

와중에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부부, 또는 친척간의 생이별도 있었을 것이고, 한순간에 전 재산과 삶의 터전이 유린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상들께서는 결코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폐허에서도 꿋꿋이 일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였던 것입니다.

끊이지 않은 우리민족의 파란 만장한 역사가 무언으로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잔디는 사람이 밟고 또 밟아도 살아남고, 자르고 또 잘라도 살아남을 뿐 아니라 가물어도 서로에게 남은 수분을 나누고, 홍수가 몰려와도 그동안 서로 굳게 껴않은 뿌리와 흙을 견고하게 지켜 어떻게든 생존의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우리는 잔디를 포함한 노방초들의 질긴 삶을 지켜보며 인생의 중단 없는 잠재력을 알뜰하게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한 송이의 꽃잎이 제 역할을 다하고 떨어질 때에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할 것이지만, 이 세상에 억지로 떨어지는 꽃잎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꽃잎에는 자연의 이법에 따르는 가느다란 끈만 있을 뿐, 사람처럼 온갖 기교를 부리는 손과 발이 없기 때문 입니다.

꽃잎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잔디밭에 옆으로 눕거나 거꾸로 서 있다 하여도 벌과 나비를 유인하여 꿀을 탐내는 곤충들을 통하여 씨방이 무사히 수정을 마치도록 최선을 다한 이후에 인연의 끈을 가볍게 놓은 것입니다.

무작정 지는 꽃잎은 스스로에게도 가족에게도 남아 있는 주변의 사람들 모두를 아프게 하며 되돌리지 못하는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사라지는 33인의 의지와 재능을 합하면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 만큼 하늘과 땅의 대자연에게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이기에, 주변의 어려운 영혼에게 서로 서로 힘을 모아 아픈 곳을 어루만져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한 조각의 자비와 은총이라도 아낌없이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건강하고 정갈하려면 그를 구성하는 개개의 존재들이 건전하고 활기가 넘쳐야 참다운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보여 집니다.

돌이나 초목의 자리와 인간이 거닐던 길목은 모두 대자연의 이법에 맞추어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자신을 잘 지키거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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