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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횡설수설 - 시인․수필가 김병연
  • 기사등록 2024-07-11 17: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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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산에서 골짜기로, 시내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흘러가는 도중에 장애물을 만나면 파괴하기보다는 넘어가고 넘을 수 없으면 부드럽게 돌아가 종래에는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많이 모인다.

  

물은 그 아래를 들여다보면 낮은 데도 있고 깊은 데도 있고 온갖 것들이 그 아래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나 수면은 언제나 수평을 이룬다.

  

물이 한꺼번에 많아져 급류를 이루면 수면이 높고 거칠어지는 것이 마치 인간 속의 뭔가가 넘쳐 화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이 높이 보여 자신만 낮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물이 너무 많아 흘러넘쳐 주위를 휩쓸어 버리는 것은 좁은 마음에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는 해코지를 하려거나 내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언제든 낮은 데로 흘러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속성처럼 우리네 마음도 물을 닮으려고 애써 노력하면 겸손과 평정의 유지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닿지 않는 곳, 미치지 않는 곳 없이 어디든지 간다. 때로는 살랑거리는 미풍(微風)으로, 때로는 휘몰아치는 폭풍(暴風)으로 간다.

  봄날의 미풍은 마치 기분이 좋을 때 얼굴에 저절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과 같고, 일한 후의 땀을 식혀 주는 여름철의 시원한 바람은 호탕한 웃음 같고 속 좁은 생각을 한 방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는 어른의 고언(苦言) 같기도 하고 사내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팔등신 미녀 같기도 하다.

  겨울바람은 마치 냉소나 비웃음 같다. 삭풍이 나뭇잎을 떨구거나 가지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냉소나 비웃음은 우리네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고 따뜻하던 마음을 차갑게 식히기도 한다. 하지만 삭풍도 언젠가는 잦아들듯이 냉소(冷笑)나 비웃음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생각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나와 이웃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

 

  바다는 육대주(六大洲)에서 밤낮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모두 받아들여도 넘치지 않는다. 사람도 마음을 바다처럼 넓게 가지면 다툴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물처럼, 바람처럼, 바다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은 나만의 부질없는 생각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내 자신이 아무리 잘나도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적당히 눈치 보고 염치를 찾고 보조를 맞추며 사는 것이다. 분명히 잘못되고 아닌 일인 줄 알지만 윗사람이나 대다수의 의견이기 때문에 소신을 말하지 못한 경우가 우리는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권위주의나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 소신 있는 사람은 자칫하면 찍혀서 불이익을 당하고 만다. 소신이랍시고 나의 의견을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고 애꿎게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결국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잘 참는 사람이 무던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외형상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의 선배들은 말한다.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쥐고 흔들 뿐 원래 공정하지 않다고, 앞장서서 큰 소리를 내고 자기주장을 하면 오히려 희생당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시대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가만있다가 위로 올라가서 힘을 가진 다음에 자기주장이나 소신을 펼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격(格)이라는 단어가 있다.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뜻하는 단어이다. 쉽게 설명하면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격에 맞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이다. 그럼에도 격에 맞게 사는 사람보다 격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이 더욱 많은 세상이다.

  속은 텅텅 비고 겉만 화려한 사람들이 많다. 내실을 다지기보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고, 격에 맞게 행동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자살을 하기도 한다.

  격에 맞게 살면 짧은 기간 동안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만, 격에 맞지 않게 사는 사람보다 오랜 기간 동안 편안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격에 맞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각자 자신이 격에 맞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삶은 분수나 본분을 알면 걱정이 없다. 격(格)에 맞게 사는 것은 분수나 본분을 안다는 것이다. 수분무환(守分無患)의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남들이 유명 상표의 옷을 입으면 나도 따라서 유명 상표의 옷을 입어야 한다. 무명 상표의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은 눈치가 보일 정도인 것이 우리나라의 실상이다. 친구들이 나이키 신발을 신으면 나도 따라서 나이키 신발을 신어야 되는 것이 고등학교 학생들의 생활이고, 친구가 명품 핸드백을 들면 나도 따라 해야 하는 것이 여대생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사치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경제 사정을 기준으로 따지면 분명 사치인데도 모두 함께 사치를 하면 건전한 것처럼 느낀다.

  그리도 저축을 많이 하던 우리나라가 이제 저축률이 바닥을 보이게 된 것도, 인격(人格)이 사라진 자리를 옷格, 車格, 집格이 차지하게 된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을 잘 지키면서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노인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곱게 늙었다는 말은 그래서 노인에게는 최상의 찬사이다. 곱게 늙으려면 행복을 찾아야 한다.

  검약(儉約)은 검소와 절약을 합성한 단어이다. 검약은 돈이나 물건, 자원 따위를 낭비하지 않고 아껴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건강도 건강할 때 아껴 써야 한다. 검약은 절약(節約)하는 가운데 꼭 필요할 때만 돈을 쓰고 나머지는 저축(貯蓄)하는 자세이다. 검약은 돈이 있지만 절제할 줄 아는 것이며 무조건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제때 쓸 곳에 쓰는 것이다. 돈이 있어도 함부로 쓰지 않고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은 그만큼의 기품이 흐른다. 또 돈이 많지만 아낄 줄 아는 자세는 또 하나의 인격(人格)이다.

  반면 오늘날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검약(儉約)은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검약하지 않는 부자는 진정(眞正)한 부자(富者)가 아니다. 실제로 한 국가의 부(富)는 그 나라 리더(leader)의 검약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표적으로 검약한 국가 리더로는 중국의 원자바오 전 총리와 미국의 포드 전 대통령,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이 있고, 재벌로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미국의 부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과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 등이 있다. 이외에도 많은 리더들이 있지만 세 명의 구체적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포드 전 미국 대통령 방한 때의 일이다. 당시 포드 대통령은 조선호텔에 묵었는데 그때 호텔 지하 세탁부에서 다림질을 하던 사람들이 포드의 옷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양복바지에는 구멍이 나 있었고 윗옷은 안감 실이 터져 있었다. 호텔 세탁부는 도저히 그냥 다릴 수가 없어서 실로 꿰맨 후에야 다림질을 했다고 한다. 그는 부자 나라의 대통령이요, 그 자신도 엄청난 거부였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의 전속 이발사는 그의 검약과 관련해 이런 증언을 남겼다. “그 양반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발하실 때 보니 러닝셔츠를 입었는데 낡아서 목 부분이 해졌고 좀이 슨 것처럼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나 있었고, 허리띠는 몇십 년을 사용했는지 두세 겹 가죽이 떨어져 따로 놀고 구멍이 늘어나 연필자루가 드나들 정도였지요.” 누가 뭐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검약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가 변기통의 물을 아끼려고 청와대 안 자신이 쓰는 욕실 변기의 물통에 벽돌 한 장을 넣어 두었던 것을 그의 사후에 보안사 수사팀이 발견해 세간에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으로 살면서 그렇게 안 해도 됐건만 평상시 살아오면서 터득한 절약 정신을 그렇게 실천했던 것이다.

  기업인으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도 검약의 실천가였다. 그가 30년 이상 살아온 종로구 청운동 자택 거실의 소파는 20년 이상 사용해 가죽이 해졌고 의자와 테이블의 목재 부분은 칠이 벗겨지거나 여기저기 수리하고 손본 자국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그 흔한 그림이나 장식품 하나도 없었다. 텔레비전은 슬림형 벽걸이 TV는커녕 요즘엔 찾아보기도 힘든 17인치 소형이었다고 한다. 과연 여기가 대한민국(大韓民國) 최고 재벌(財閥)이 살던 거실(居室)인가 의심(疑心)할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들도 서류 초안을 작성할 때는 이면지를 사용하고 교통편도 가급적 대중교통(시내버스, 시외버스, 택시, 지하철 등)을 이용해야 된다.

 

  우리나라는 연간 18조 원 이상의 음식물쓰레기(잔반)로 인한 낭비를 하고 있다. 단체급식소부터 밥과 국에 3가지 반찬으로 줄이고, ‘잔반 남기지 않기’ 캠페인(campaign)을 벌여야 한다.

  

물 부족 국가에 사니까 물을 아끼는 것도 좀 더 철저히 하고 전기나 세탁용 세제 등 각종 생활용품(生活用品)의 절약(節約)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낭비(浪費)하는 사람에겐 남아나는 것이 없다. 이 세상(世上) 모든 물자(物資)는 유한재(有限財)이다.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훌륭한 지도자들의 검약(儉約) 정신을 모두가 본받아야 한다.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은 세상에 회자되는 세 가지 거짓말 중 하나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보니 아무리 늙고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해도 정말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장수(長壽)에 대한 욕심(欲心)은 충분히 이해(理解)가 된다.

  

건강(健康)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比重)이 무엇보다 크게 자리하는 시대(時代)이다. 건강을 잃은 사람 앞에 돈과 명예는 한낱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는 이야기는 앞으로 더욱 실감할 사실이다.

  

물리적인 수명이 늘어난 것은 이미 입증된 바, 이제 관건은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이다. 혹자는 장수가 오히려 재앙이라며 건강을 잃어버린 후의 긴 수명(壽命)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역설한다. 경제력이 없는 상태, 자식으로부터의 소외, 인권의 상실 등과 함께 건강을 잃은 장수(長壽)는 오히려 불행하다는 말은 진실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사(人間事)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지만, 어떻게 대처하고 꾸려 가느냐에 따라 그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노인(老人)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건강(健康)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진취적이고 활력이 있다고 한다.

  

무작정 과하게 수명에 대한 욕심을 부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관하며 남은 인생을 내버리듯 아무렇게나 살 일도 아니다.

  

얼마나 행복하게 오래 사느냐가 앞으로 남은 우리의 가장 큰 숙제이다. 노인이지만 좋은 추억만 떠올리며 언제나 중년이라는 생각으로 건강하고 즐겁게 살면 행복(幸福)하게 장수(長壽)할 것이다.

 

몇몇 교육학자들은 학생들에게 경쟁을 시키지 말라고 한다. 서열교육은 인성을 해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일부 교사들은 학력평가를 반대하고 있다. 평가를 하면 학생과 학교와 교사들 간에 경쟁을 하게 되고 경쟁은 인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핀란드는 무학년제(無學年制) 교육의 실시로 무한경쟁(無限競爭)을 시키고 있다.

  

앞으로 일류국가는 두뇌를 팔고 삼류국가는 물건을 파는 시대가 온다. 다시 말해 우수한 1%가 나머지 99%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온다. 이런 미래의 대비책(對備策)으로 교육의 기회는 부여하되 잘하는 사람은 더욱 잘할 수 있게 하고 못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능력과 소질을 살려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교육의 하향평준화는 공멸(共滅)로 가는 첩경이다. 세계적 인재의 양성을 위해 경쟁은 꼭 필요하다. 경쟁은 평가로부터 나오며 평가의 결과는 서열로 나타난다. 만약 모든 학교가 시험을 치르지 않고 추첨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모든 직장이 추첨으로 신입 직원을 선발한다면 나라의 장래를 예측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계는 무한경쟁 속에 있고, 이 경쟁에서 낙오되는 나라는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다. 이제 중․고교에서 우열반(優劣班)을 편성하고 대학입시(大學入試)를 부활할 때가 분명 되었다.

  

6․25 전쟁의 참혹함을,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을, 6․25 전쟁 유가족의 고통을,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킨 6·25 참전용사의 공로를, 이역만리 타국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피 흘려 싸운 유엔군의 공로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6·25 전쟁(戰爭)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歷史)를 바르게 가르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에도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한미(韓美) 군사동맹(軍事同盟)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 땅에 6․25 전쟁과 같은 비극이 없어야 되겠으며,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베지티우스의 명언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하자.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존재들의 속삭임을 들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헛된 희망에 빠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겨우내 숲은 새 생명을 소리 없이 싹 틔우고 있다. 울창한 숲에서 나무들은 저마다 자신의 존재를 빛내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에 가장 먼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벌써 촉을 내고 솜털을 냈다.

  

모든 생명들은 계절을 기다리며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숭고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본능이라고 한다. 인류 또한 시대를 거듭하면서 사회를 발전시켜왔고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질문명을 극대화시키는 자본 중심의 사회체제가 등장했다. 이러한 자본주의(資本主義) 체제에서 우리는 인간의 편익과 편리가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으로 믿어 왔는데 참담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자살률의 급속한 증가, 우울증, 청년실업, 그리고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 빈부 갈등, 산업사회의 질병 등등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사회의 모순에 대한 자각은 느림의 문화로, 느림의 문화 가운데 하나로 걷기가 등장했다. 직립보행(直立步行), 인간의 특성인 걷기를 우리는 잊어버렸다. 선인들은 산천을 유람하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사람다운 삶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 자연 속에서의 걷기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는 지혜를 준다. 천천히 걸으면 모든 생명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 지를 느낄 수 있다.

  

걷는 길은 단순히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연결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 등 인문학적 요소와 자원과 식생 등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그 지역의 삶에 대해 동참하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만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현상(循環現象)은 정말로 자연스럽게 생멸(生滅)을 거듭한다. 모든 생명현상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삶 또한 세대를 이어가는 순환과정이다.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순환질서(循環秩序) 속에서 살고 있는가. 겨우내 삭풍(朔風)이 몰아치고 매서운 한파와 눈보라 속에서도 잎눈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키우는 나무와 같이 우리도 다음 세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물음에 대한 대답은 시원치가 않다. 울창했던 숲이 어느새 나무가 베어지고 도로, 고사리밭, 과수원 등으로 바뀐 곳이 많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더 빨라지면서 생긴 결과(結果)는 자연재해(自然災害)라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부메랑(boomerang)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데도 욕망(欲望)의 질주(疾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유난히 맑은 날, 숲길을 걷다 보면 천하(天下)가 모두 내 것 같다. 숲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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