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2023년은 전략작물직불제 도입에 의해 가루쌀만 재배하면 1㏊당 100만원을 지원한다. 전남도는 이러한 전략작물직불제 도입에 힘입어 내년부터 700㏊ 면적에서 본격적인 가루쌀 재배에 나선다. 가루쌀용 벼재배 장려 이면에는 쌀 소비의 안정화, 쌀가루에 의해 수입 비중이 큰 밀가루 소비 대체 등 다목적 포석이 있다.
가루쌀의 재배가 늘어나면 그만큼 기존 용도의 쌀이 줄어들므로 과잉생산에 도움이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루쌀용 벼로 전환되어 생산된 쌀이 분식 제품에 성공적으로 사용되면 그만큼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다. 게다가 가루쌀용 생산 정책은 농민들에게 쌀소비의 안정화를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아마 이러한 포석하에 가루쌀 재배에 나서고 있는 듯한데 세심한 준비없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다. 가루쌀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선 가루용으로 품질이 좋고 다수성 품종의 벼가 육성되어야 한다. 베트남 쌀국수, 라이스 페이퍼(월남쌈)처럼 쌀가루를 이용하기에 좋은 품종은 아밀로스 함량이 많은 인디카 계통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주로 많이 재배하는 자포니카 계통과 다소 차이가 있어 품종 육성, 재배 기술이 다소 다르게 적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쌀가루용 품종이 육성되어 있으나 다양성이 부족하고, 생산성 또한 높지 못한 편이다. 2기작이나 2회 수확 기술에 의한 생산량 증가와 생산단가 절감 등에 관한 연구는 되어 있지도 않은 실정이다.
품질 좋은 쌀가루는 쌀가루용 품종의 벼재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같은 쌀이라도 제분 기술에 의해 품질에 차이가 크다. 밀가루 대용으로 사용하려면 쌀가루에 있는 전분이 손상되지 않고 입경이 미세한 분말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특수 제분 설비와 기술이 필요하다.
쌀가루로 빵을 만들려면 제빵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인 ① 아밀로스 함량, ② 전분 손상 정도 ③ 입자 크기 조건이 맞아야 한다. ①의 아밀로스 함량은 품종 선택으로 해결할 수 있으나 ②와 ③은 제분 설비 및 기술과 관련성이 깊다.
제분 과정에서 쌀가루를 건식 기류 분쇄기에서 제분하면 전분의 손상도는 10% 정도 된다. 쌀가루 재료를 물에 한 번 담가서 부드럽게 하고 나서 분쇄하는 습식 기류 분쇄기로 제분하면 전분의 손상도는 5% 이하로 할 수 있다.
습식 기류 분쇄기로 분쇄한 쌀가루의 평균 입경은 20μm 정도로 빵 등을 만들기가 좋으나 이 기술을 적용하면 비용이 많아진다. 전분의 손상도를 적게 하고 입경을 작게 하려면 설비와 제분 노하우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쌀가루의 제분율이 낮고, 설비나 경험 측면에서 부족한 편이다.
아밀로스 함량이 많은 쌀가루용 벼 품종을 재배하여 우수한 품질로 제분을 한다고 해도 제빵, 국수, 과자 제조 단계에서 쌀가루 특성을 바탕으로 한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잘 만들어도 소비가 없으면 판로가 어렵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쌀을 가루로 만들어 떡이나 한과 등의 재료로 사용해 온 전통은 있으나 빵 등을 만드는 것도, 판매하는 것도, 소비자들이 맛보는 것도 새로운 것이다.
밀가루를 이용해서 빵을 만들 경우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이 반죽에 끈기와 탄력을 주어 효모에 의해 발생하는 가스를 반죽 안쪽에 갇히게 해 반죽 전체가 부풀어 오른다. 그로 인해 통통한 빵을 만들 수가 있는데, 가루쌀에는 글루텐이 없으므로 효모가 발생하는 가스를 반죽 안쪽에 가두기 위해서는 가루의 입자 크기가 작아야 한다. 또는 알파(α)화도(호화도)가 높은 쌀가루를 제조해야 한다.
밀가루와 쌀가루의 차이 그리고 가루의 입자 크기는 물성은 물론 상품이 만들어졌을 때 맛에 영향을 미친다. 이 맛에 차이를 활용하여 기존의 밀가루로 만든 제품에 길들여진 소비자 입맛을 뛰어 넘어야 한다. 더 맛있게 하거나 기호성이 높은 고유의 맛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소비 촉진이 어렵다.
따라서 가루쌀이 성공하려면 가루쌀 품종의 벼재배만으로 부족하다. 쌀가루의 제분 설비과 기술, 쌀가루 식품을 만드는 기술, 소비자의 기호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준비와 대응책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 부분에 대한 논의나 준비는 없고 가루쌀 재배면적 확대만으로 할 일은 다했다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듯하다. 쌀 소비의 안정화, 쌀가루의 성공 및 농민을 위한다면 전라남도만이라도 할 일은 했다는 함정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참고자료
허북구. 2022. 빵 만들기에 좋은 쌀가루.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 2022-12-16.
허북구. 2022. 쌀 소비 촉진 기대주, 알파화 쌀가루.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 2022-12-15.
허북구. 2022. 사료용 쌀과 축산물의 브랜드화.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 2022-11-30.
허북구. 2022. 전남 쌀 산업, 사료용 쌀 생산도 고려해야.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 2022-11-29.
허북구. 2022. 쌀가루 음식과 쌀가루용 벼. 전남인터넷신문 농업칼럼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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