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나주군 과물조합[전남인터넷신문]나주시 죽림동 옛 나주역 앞에는 과거 ‘나주군 과물조합’건물이 있다. 과물조합은 과수조합으로 조합건물은 구 나주역 앞에 있으며, 현재 도시 재생사업이 진행되면서 철거 중이다.
‘나주군 과물조합’은 일제 강점기와 1950년대 말까지 나주의 배, 복숭아, 감, 포도 등의 생산자 조합이자 과일을 유통했던 핵심 주체였으나 관련된 자료가 거의 없다.
나주배원예농협의 조합연혁에는 나주군 과물조합이 1922년 3월에 발족되었고, 이것이 나주배원예농협의 모태가 된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1919년 7월 26일자 매일신보의 ‘나주과물의 성가( 羅州 果物의 聲價)’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과거를 돌아 보건데 4년 전 동업자가 상의하고 과물생산조합을 조직하여 상품의 통일, 판매방법 등 각 방면에 개량을 하였는데 점차 세인들에게 알려짐으로 인하여 나주 과물의 성가를 거양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1919년 기준 4년 전이면 1915년에 과물생산조합이 조직되었다.
한편, 나주에 처음으로 상업적인 배과수원을 개간하고 일본 배품종을 도입해서 재배한 것으로 알려진 마쓰후지 덴로꾸(松藤傳六, 1873-1939)의 송덕비(頌德碑)의 공적서에는 1933년 4월에 ‘나주군 과물조합’을 창립하고 초대 조합장이 되었다고 나타나 있다.
마쓰후지 덴로꾸(松藤傳六)의 송덕비(頌德碑)는 1936년부터 1942년까지 제7대 조선 총독을 지낸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1939년 나주에서 사망한 마쯔후지 덴로쿠의 ‘과수원예 보급 장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주 남고문 인근에 있었던 본룡사라는 일본 절터에 세운 비석이다.
마쓰후지 덴로꾸의 송덕비와 관련된 공적서에는 “과수재배가 증가함에 따라 이 일의 발전상 생산업자의 통제를 꾀할 필요를 통감하고 업자에게 주창 동의를 얻어 쇼와 8년(1933년) 4월 나주군 과물조합을 창립하고 초대조합장으로 취직했다. 1935년에는 나주 통조림황도조합장 취임에 취임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나주군 과물조합의 창립과 관련 신문 기사에는 조선일보 1939년 2월 5일 자의 ‘나주산 포도, 梨(이), 桃等(도 등)의 해외 진출지도’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이 기사에는 “전남 나주지방에는 기후와 토질로부터 과수재배에 최적이도 인정되여 발써 30여년전부터 배, 복숭아, 포도 등을 재배하야 왓섯는데, 그의 생산액은 축연증가의 일로블 밟어 쵠에 이르러서는 연산액 삼십만원대를 돌하고 잇으며...중략... 생산과 판로에 대한 지반을 더욱 공고히 수립하기 위하야 육연전 과물조합을 창립한 이래 꾸준히 노력하여 오던바....후략”라는 내용이 있다.
기사 내용에는 6년 전에 과물조합을 창립하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기사가 1939년의 것이니까 ‘나주군 과물조합’의 창립은 마쓰후지 덴로꾸의 공적서에 나와 있는 것처럼 1933년이다.
‘나주군 과물조합의’조직과 발족에 이렇게 혼선이 있는 것은 기록에 따른 차이, 임의조직과 등록조직, 조직 주체 등에 의한 차이로 생각되며 앞으로 관련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주군 과물조합’에서 했던 일은 마쓰후지 덴로꾸의 공적서와 과물조합이 운영되던 때의 신물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다. 마쓰후지 덴로꾸의 공적서에는 “가업은 아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조합사무소에 기거하며 전심으로 조합사업을 통일 재배 개량, 적당한 종자 장려, 병충해 구제 독촉격려, 비료 및 생과 포장 용품 및 필요품의 공동구매, 공동 판매품의 규격통일 판로확장 그 외 생산 판매 양방면에 걸쳐 각종 시설경영에 주야 침식을 잊고 몰두하여 오로지 조합사업 진전에 힘써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 마침내 현재의 기초가 공고한 조합이 되어 목하 동업 조합령에 따른 법인조직으로 바꾸기 위해 수속 중이다.”라는 내용이 있어 공동구매, 생산기술 보급과 판로 확장 업무에 노력했음을 알 수가 있다.
경향신문 1947년 12월 16일자 신문의 ‘나주 생이 해외 수출(羅州生梨海外輸出)’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나주군 과물조합에서는 나주 명산 생리(生梨) 만삼길을 오는 이십일 경에 홍콩으로 수출하리라 하는데 그 수량은 일만관이라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나주군 과물조합’이 수출에도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엣‘나주군 과물조합’이 옛 나주역 앞에 위치한 이유와 무관하지가 않다.
‘나주군 과물조합’은 이후 1958년 8월에 나주원예협동조합으로 단일조직(과수, 채소조합)화 되었으며, 1963년 3월에 농협중앙회 회원조합으로 가입했다. 이후 조합은 몇 번에 걸쳐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2005년 8월에 오늘날과 같은 나주배원예농업협동조합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