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영산강과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나주는 고려시대인 983년(성종 2)에 전국 12목(牧)의 하나로서 나주목이 되어 5개 군과 11개현을 다스렸다.
고려 현종 때 현 전남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나주만이 목이 되어 이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나주에 진을 두었다가 후에 전라우영이 설치되었고, 1896년 나주관찰부가 폐지될 때까지 약 천년간 306명의 목사가 부임하여 호남을 다스렸던 호남의 웅도였다.
나주는 육로(陸路)와 해로(海路)가 발달되었던 교통의 요지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호남의 각종 집산물이 몰려들었고, 물건들과 함께 사람들도 늘 북적였으며, 상권이 크게 형성된 곳이기도 하였다.
물자와 사람이 모여든 나주에는 나주만의 지역적 특성이 가미된 음식이 발달되었으며, 그중의 하나가 나주집장이다(사진). 집장은 역사가 깊고 많은 지역에서 제조 이용되었으나 나주에서는 필자의 조사 결과 크게 집장과 부삭장으로 구분되어 발달했었다.
필자는 2014년에 나주에 거주하고 있는 68세 이상의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집장 이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일부 문헌에 나타나 있는 즙장, 막장, 거름장, 채장 등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집장에 대한 개념도 명확했다.
“집장은 여름철에 재메주(보리의 속계로 부드럽고 보리쌀가루가 섞여 있는 것으로 나주의 고령자들 사이에서는 보리속죽제로 많이 불리며 저베주라고도 한다) 가루를 넣어서 만든 것이고, 묵덕장(부삭장)은 가을에 장을 담글 때 콩 메주를 남겨 두었다가 메주를 찌어서(부셔서) 김치와 함께 담근 것이다(문0예. 1937년생. 2014년 8월 12일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서 인터뷰를 함)”.
“보리속죽제를 이용해서 여름에 만드는 것은 집장이며, 콩으로 메주를 만들어서 하는 묵덕장인데 겨울에 하는 것을 부삭장이라고 한다(윤0순. 1932년생. 2014년 7월 14일 나주시 세지면 황교리 노인정에서 인터뷰를 함)” 라는 증언처럼 집장과 부삭장류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2014년 기준 나주 거주 68세 이상의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집장류는 집장, 풀짚장으로 불리었으며, 부삭장류는 부삭장, 부삽장, 묵덕장, 정계묵덕장, 깨묵장, 깻묵장, 깨목장, 덥덕장, 덮장, 지국장, 제죽장으로 불리었다.
집장과 부삭장을 구별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집장과 부삭장의 구분 기준에서 제조 시기의 경우 집장은 주로 여름이나 가을에, 부삭장은 주로 겨울과 초봄에 제조했다. 메주 재료는 집장의 경우 보리속죽제를 사용했고, 부삭장은 콩을 사용했다. 메주의 형태는 집장의 경우 가루를 사용했고, 부삭장은 작은 덩어리를 사용했다.
보리밥은 집장의 경우 사용했고, 부삭장은 대부분 사용되지 않았다. 채소류 첨가는 집장의 경우 고춧잎, 무, 오리, 호박을 사용했고, 부삭장에는 묵은 김치, 싱건지(물김치)를 사용했다. 국물로는 집장의 경우 쉰보리밥 소금물 등을 사용했고, 부삭장은 김칫국물, 싱건지국물 등을 사용했다.
따라서 나주의 집장은 크게 집장과 부삭장으로 구분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구분 기준과 이용시기가 명확한 것이 나주집장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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