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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영산포 쪽 염색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 -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부학회장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허북구
  • 기사등록 2021-09-04 10: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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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염색했던 가옥[전남인터넷신문]근대에 매우 번성했던 나주 영산포는 쪽 염색문화에서도 번성했던 곳이다. 


우리나라 쪽 염색의 역사 측면에서 보면 합성염료가 보급된 이후 가장 마지막까지, 쪽 염료가 가장 많이 생산되고 유통되었으며, 염색되었던 곳이다. 

 

영산포의 쪽 염색은 규모나 유통 시스템 측면에서 가장 늦게까지 번성했는데도 나주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 이유에 대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까지 영산포 쪽 문화를 조사했던 학자에 의하면 “쪽 염색을 했다는 분들을 찾아뵈면 과거를 숨기려 해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쪽 염색을 했던 분들 자손들이 과거를 숨긴 이유에 대해 그 학자는 “장인을 천대시했던 과거의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명장, 명인,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등 특정 공예에 대해 발군의 기능을 지닌 분들 및 전통 공예에 대한 우수한 기능을 보유한 분들을 우대 시 하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는 물론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공예인을 하대(下代)하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장인을 하대했던 문화는 세계 곳곳에서 있었다. 특히 쪽 염색은 그 정도가 심했다. 수 세기 전 유럽에서 쪽 제품은 희귀 상품으로 왕족과 귀족 등 권력과 부유층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했고, 차, 커피, 비단, 심지어 금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쪽은 귀중품이었으나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 유럽에서 생산되는 쪽 식물 대청(Woad)은 인도 등지의 쪽 식물 인디고페라(Indigofera)에서 얻을 수 있는 인디고 양의 30의 1밖에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쪽 염색된 천은 이처럼 귀하고 고급 상품이었으나 정작 쪽 염색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들에 대해서는 천대시했다. 쪽 염색은 공정이 매우 힘들며, 염액을 만들고 염색하는 것은 마술처럼 희귀하고 어려운 기술로 여겨졌는데도 그랬다. 

 

당시 유럽에서 쪽 염액을 만들기 위해서는 쪽 식물을 수확해 인디고 볼을 만들고, 이것을 이용해서 염액을 만들 때는 발효를 위해 소변 등을 첨가하는 등의 작업을 해야 했다. 이 과정은 더럽고 냄새가 났으며, 장인의 몸에서도 냄새가 뱄다. 그러한 이유로 쪽 염색 장인은 성안에 살지 못하도록 하는 등 핍박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귀하고 비싼 쪽 염료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등지의 식민지 개척과 함께 식민지에서 쪽을 생산하였다. 그 과정에서도 식민지의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영국 감독자들은 인도 노동자들을 강제로 악취가 나는 쪽 추출과 발효조에 들어가게 했다.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의 백과사전(Encyclopédie)에 따르면 이렇게 쪽 작업을 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죽었다고 한다.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의 쪽 농장 또한 노예 노동의 의존과 함께 착취했고, 영국의 시업자들 또한 식민지 인도 사람들의 노동력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간디가 진행한 비폭력 무저항 시민운동의 시작은 착취를 당했던 인도의 쪽 농민을 위한 것이었다. 

 

영국 상인들은 식민지인 벵갈에서도 지역 주식인 쌀 재배를 중단하고 대신 쪽을 재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고문, 강간, 살인, 방화 등 다양하고, 극도로 억압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벵갈 농민들은 쪽 재배를 거부하고, 반영국 반란인 ‘청색 반란’을 일으켰다. 1858년부터 1860년까지 벵골의 남성들은 칼과 창, 활과 화살로 무장했고, 여성들은 또한 냄비, 팬더 및 주방 도구를 들고 영국인들과 싸웠다. 

 

유럽에서 쪽 염색 장인을 하대했던 것에 그치지 않고 식민지화, 노예제 및 착취를 주도한 품목이었던 쪽은 현재 전통문화와 예술로서 매우 존중받고 있다.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독일 및 헝가리의 전통적인 쪽염색 기술인 인디고 블록프린팅 염색기술이 2018년 11월에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됐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6월 말에 서부 프랑스에서 천연 쪽을 만드는 데 사용된 수 백년 된 기술을 문화부의 무형 문화 유산(PCI) 목록에 등재했다.

 

세계 각지의 전통 쪽 문화는 부활하고 있는데, 과거에 쪽 염료 생산과 염색이 활발했던 나주 영산포의 쪽 염색문화는 어떤 이유에서든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사진은 과거 쪽염료 제조와 염색을 했던 영산동의 가옥으로 2009년 9월 5일에 촬영했다). 그 전통과 유물은 나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쪽 염색의 문화사 측면에서 큰 자산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데도 그렇다. 이 문화가 다시 조명받고, 부활해 지역 발전과 국내 쪽 염색 문화예술의 발전에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자료

허북구. 2011. 근대 나주의 쪽 문화와 쪽물 염색. 퍼브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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