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대만 삼협(三峽, 싼샤)은 수도 대북(臺北, 타이베이)에서 약 22km 떨어져 있는 옛 거리이다. 대북에서 자동차로는 1시간 정도 소요되며, MRT(대만의 지하철)의 서쪽 끝 역인 영녕역(永寧駅)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다.
삼협의 주변은 국립타이베이대학과 고급 아파트가 즐비하나 그 가운데에 있는 삼협 거리는 옛날과 같은 모습이다. 2004년부터 예전의 모습을 복원한 삼협 거리는 복고풍(retro)의 거리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삼협은 명나라 말기 무렵부터 개척이 진행된 도시로 거리는 청나라 중기에 형성되었는데, 1895년에 삼협 주민들이 항일 운동을 하자 일본군이 이 거리를 불태웠다.
그리고 1916년에 일본 정부의 시가지 개혁 정책에 의해 고대 그리스식 기둥과 고대 로마식 아치 및 고딕양식의 장식 등 서양식 스타일을 융합한 건축물을 세운 거리를 만들었다. 삼협의 중심 거리에 세워진 건축물은 서양식에 일본의 가문(家紋) 및 한인(漢人)의 모양문화(模樣文化) 등 동양, 서양 및 일본양식이 병합된 특수 건축 스타일이다.
웅장한 삼협 거리는 과거의 번화했던 모습을 연상케 하며, 지금도 남아 있는 옛 간판에서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상품을 찾아볼 수가 있다. 옛 간판을 보면 유독 많은 것이 염색물 가게이다. 기록에 의하면 1870년대 삼협의 거리에는 30개나 되는 염색물 가게가 있었다. 그 당시 삼협(三峽)은 대만에서 쪽염색이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다.
삼협이 과거에 쪽 염색으로 유명했던 배경은 산지와 유통의 중심지였던 것과 관련이 깊다. 과거 삼협 근처는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아 대만의 쪽 식물인 산람(쥐꼬리망초과의 식물)이 소득 작물로 많이 재배되었다.
삼협은 나주 영산포가 영산강을 끼고 있는 것처럼 강을 끼고 있는데, 세 개의 하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하천 세 개가 만나 물이 용솟음치는 데서 삼각용(三角湧)이라 불렀다. 하천은 지금도 시내를 가로질러 강물이 흐르고 있다. 삼협 거리를 끼고 있는 큰 강은 염색에 필수적인 물을 제공한 것과 함께 강을 통해 염료와 염색된 천의 유통경로가 되었다.
쪽 염색을 했던 가게는 일본 통치 시대 중기에 들어서면서 양복이나 옷가게로 변했다. 1940년대 이후에는 퇴색해 버렸지만 지금도 삼협의 거리에 남아 있는 옛날 염색집의 상호와 인근의 하천은 삼협 지역민들에게 타이완 쪽 염색의 일번지였다는 자부심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쪽 염색 부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삼협(三峽, 쌴샤) 주민들은 염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지역문화의 보존 전승 차원에서 쪽염색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매년 삼협의 쪽 축제인 ‘삼협람염절(三峽藍染節, 쌴샤란란절)’을 개최하고 있다(사진). 삼협 쪽염색 축제는 대만정부, 지방자치단체 및 해당 지역의 천연염색 작가들이 공동으로 지원하여 해마다 열리고 있는데, 규모와 기간은 일정하지 않은 편이다
한편, 나주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쪽염색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나주에서 쪽염색은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 문화는 융성했다. 특히 교통과 상권의 중심지였던 영산포, 한양가는 길목인 문평면 지산마을과 명하마을, 포구였던 다시면 가흥리에서 발달했었는데, 영산포를 제외하고는 그 문화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나주 영산포는 과거에 영산강변의 쪽 재배에 좋은 환경, 염색에 필수적인 풍부한 물 그리고 교통과 상권의 중심지여서 쪽의 재배, 염료의 제조, 쪽염료와 쪽제품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특히 대만 삼협처럼 영산강이라는 수로는 염료와 염색된 천의 유통경로가 되어 국내 최대의 쪽문화 융성지로서 명성이 전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