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나주 영산포에 거주하는 80대 이상의 어르신들께 인초(藺草)를 질문해 보면 모르는 분들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나주 영산포는 인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나 지금은 어르신들의 기억과 폐허가 된 동신인초 공장 외에는 인초문화가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골풀의 한자 이름인 인초(藺草)가 나주 영산포에서 어르신들 사이에서 유명한 것은 영산포가 과거에 꽃문양이 있는 자리(돗자리 등)의 국내 최대 산지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영산포에는 많은 돗자리 공장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것들은 거의 다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대일 수출용으로 생산되다 보니 재료로 사용되는 골풀 이름도 일본에서도 사용하는 한자 이름인 인초로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인초보다는 골풀이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인초라는 이름 자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과 함께 골풀로 만들었던 자리 또한 생산성이 맞지 않아 생산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한때 영산포의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던 골풀은 영산포에서도 잊혀지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생성과 소멸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으나 역사와 전통은 한순간에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영산포 골풀의 이용역사는 매우 소중한 자산인데도 활용되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는 점은 안타까움 그 자체이다.
영산포에서 골풀 생산품의 소멸은 생산성이 맞지 않으므로 생산성 측면에서 이에 대한 변명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대만, 일본 등 영산포와 유사한 골풀 역사가 있는 곳에서는 시대 변화와 함께 골풀의 이용문화가 변하면서 지역민의 문화 예술 생활에 기여하고 있다(사진). 대만 먀요리현(苗栗縣) 위안리(苑裡)에서는 전통공예인 골풀 공예를 도시재생에 활용해 성공했다.
일본 구마모토현(熊本県) 야쓰시로시(八代市)에서는 다다미 외에 공예와 식품산업에 활용하고 있다. 두 곳에서는 골풀의 직조와 공예를 지역민들의 문화활동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축제(문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대만 위안리에서는 전시관 운영, 공모전 개최, 작가와 공방 육성, 전시회 등을 개최하면서 시대와 맞게 호흡하면서 활용하고 있으며, 대만 타이중시(臺中市)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나주 영산포는 과거 해상운송로의 중요 항구로 나주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31년에 나주면이 읍으로 승격하기 이전인 1927년 영산면이 영산포읍(榮山浦邑)으로 승격하는 등 상업적으로 부흥의 시기가 있었으나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고급적인 브랜드 가치는 제대로 가꿔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골풀의 직조와 공예의 활용 필요성은 더욱더 크다.
영산포에서 골풀 공예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역사성이 있으며 문화와 공예로 발전 가능성이 커서 영산포의 문화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문화 상품으로서 활용 가치가 크다. 동시에 영산포 지역민의 문화생활 영위 측면에서도 골풀 공예의 활용 필요성은 높다. 골풀공예는 직조를 통한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고, 취미생활로도 활용도가 높다. 직조는 두뇌와 손을 사용하고, 창의성이 필요해 성취감이 높은 행위여 노인시설뿐만 아니라 평생 교육 프로그램,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 등에 활용하기 좋다.
골풀 공예 활동을 활성화시키면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한 공예가가 육성되고, 육성된 공예가들은 학교, 시설 등에서 체험 강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방을 할 수 있게 된다. 학교 등지에서 골풀 공예 교육은 지역의 정체성을 높이고, 공방의 존재는 지역을 더욱더 특색화 시키는 것은 물론 문화와 공예품이 상품화되면서 지역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된다.
지역의 이미지가 고급스럽게 만들어지면 그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한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전입이 증가하고, 지역은 더욱더 좋은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관련 분야의 산업이 성장하면서 지역의 가치가 높아진다. 영산포에서 골풀의 직조 문화 역사 자원은 이처럼 잠재적 자원 가치가 매우 크다. 지역에서부터 그 문화에 관심을 갖고, 활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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