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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 들춰보기: 인초 고장 나주 영산포와 대만 위안리진 -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부학회장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허북구
  • 기사등록 2021-08-03 09:11:39
  • 수정 2021-08-03 09: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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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인초(藺草)는 골풀이다. 골풀은 생약으로도 사용되지만 주로 방석, 돗자리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과거에 돗자리용으로 인초가 600ha 이상 재배되었다. 


농가에서 재배한 인초는 대부분 돗자리용으로 이용되었으며, 골풀로 돗자리 짜는 공장을 인초공장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 인초 공장은 대부분이 나주에 있었으며, 특히 영산포에 집중되었다. 

 

영산포는 내륙 항구로 홍어를 비롯해 수산물의 유통이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인초 생산과 가공이 주력산업일 정도로 비중이 컸다. 당시 영산포에는 인초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지역경제에도 활기를 불어넣었으나 지금은 그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잊혀지고 있다.

 

대만에도 나주 영산포처럼 과거에 인초가 지역민의 생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지역이 있었다. 그곳은 먀오리현(苗栗縣) 위안리진(苑裡鎮)이다. 위안리진은 인구가 4만 7천명(2017년 1월 기준) 정도 된다. 대만의 10대 옛 거리에 포함될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며, 인초와도 관련이 깊다.

 

위안리에서 인초는 과거에 수많은 가정을 부양했고, 인초 공예는 이곳 여성들의 가치와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했다. 위안리에서 인초 공예는 1727년 여성들이 인초로 생활용품을 만든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모자, 방석 등의 인초 공예품을 짜서 일본 등지에 수출했다. 당시 인초 공예품은 대만 수출 품목 중 설탕, 쌀 다음으로 수출량이 많았다. 제품 제조 기술도 과거의 단순한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발전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수출이 중단되자 내수판매로 전환하였으며, 모자, 돗자리 산업의 또 다른 황금기를 맞았다. 주요 시장은 대만뿐만 아니라 중국의 주요 도시로 확장되었다. 상하이의 고급 호텔에서는 가장 진보된 침구류가 되었으며, 인초 모자는 당시 가장 유행하는 개인 패션용품 중 하나가 되었다. 

 

1971년 이후, 플라스틱 소재의 사용과 공장의 부상으로 인초 모자와 돗자리 제조업은 전례 없는 큰 타격을 입었다. 위안리(苑裡)의 많은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인초 공예품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가 되었으며, 곳곳에서 인초로 돗자리 등을 짜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20년이 지난 후 위안리(苑裡) 주민들은 인초협회를 만들어 지역의 전통문화 복원에 나섰다. 지역의 초등학교에서는 인초 공예를 가르쳤고, 지역 농민들과 사회단체, 지역의 의원들은 인초 재배와 공예의 부활을 위해 힘을 합쳤다. 과거 인초 공예 경험을 가진 여성들은 돗자리 만들기 등에 참여했고, 젊은이들과 디자이너들이 합류해 참신한 디자인과 창의적인 제품 생산을 촉진했다.

 

젊은이들은 낡은 옛 거리에 인초 공방을 만들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노인시설 등에서는 인초 공예가 취미 생활로 도입되었으며, 초등학교 등지에서는 창작 활동으로 도입되었다. 인초 공방에서는 인초를 이용한 가방, 휴대폰 가방, 패션소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DIY 체험, 전시회(사진, 위안리에서 제작된 인초 공예품의 전시회) 등을 하고 있다.

 

먀오리현(苗栗縣) 정부에서는 인초 공예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인초문화관(藺草文化館)을 건립하여 지역의 인초 역사 소개, 인초 공예품의 전시 및 판매 등을 통해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갖게 하고, 관광객들이 위안리의 인초 공예를 한눈에 보고 이해하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여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나주시 영산포와 대만 먀오리현 위안리는 인초라는 공통점, 과거에 번화했던 거리 등 닮은 점이 많으면서도 차이점이 있다. 위안리에서는 지역의 유지와 지역민들이 나서서 과거의 인초 공예 유산을 다시 되살려 특산품 및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비해 나주 영산포에서는 인초 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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