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죽제품은 과거에 중요한 생활 소도구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죽제품 소비가 많은 과거의 경우 대나무가 잘 자라는 전남과 경남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죽제품 생산이 많았다. 그중에서 특히 나주는 우수한 죽제품의 생산지였다(사진은 일제강점기 때 제작된 엽서로 나주 죽세공품 제작 모습).
조선 시대 후기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 1809년 발간)에는 부채는 남평과 옥과를 치고, 채죽상자는 담양, 활은 거제, 담뱃대는 동래와 부산을 쳐주고, 장대(竹竿)는 나주, 오죽설대(烏竹竿竹)는 영광, 갓(양태)은 통영, 그리고 간죽(竹竿) 담배설대는 금화, 연죽(煙竹)은 부산, 가는 대(細竹)삿갓은 담양산을 제일로 쳐준다는 내용이 있다. 나주는 장대와 대나무를 이용하는 부채 명산지로 소개되어 있다.
충남 공주(公州)의 유학자인 이병연(李秉延)이 1910년부터 100여명을 동원해 12년 동안 전국 13도 229개군 가운데 129개군을 직접 조사하여 편찬한 백과사전적인 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남평군은 1914년 남평면으로 변경되어 나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특산품으로 선자(扇子)가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경성(서울)에서 발행된 일본어신문인 경성일보(京城日報)의 1923년 10월 6일자 지면에도 나주 주세공품이 소개되어 있다. 신문에는 죽세공품의 산지로 유명한 곳은 전라남도 나주 및 담양 양군이며, 1913년 나주공예품제작소가 설립된 이후 지방비의 보조로 발, 소쿠리 등 죽제품 전문인력 양성으로 발달해 주문이 속출하고 있으며, 담양은 대키, 댓자리를 산출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경성일보 1923년 10월 7일자 지면에는 나주는 죽제품의 주요 산지이며, 품목으로는 부채 외에 대발, 대비 등이 유명하다는 내용이 있다.
동아일보 1931년 6월 3일자 신문에는 전남 나주에는 “세간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채, 발 등 견고 미려한 특산물이 있으나 현대적인 기계에 의한 산품이 아니요”라는 기사가 있고, 같은 신문 1931년 10월 31일자 신문에는 “전남 나주의 특산물인 발, 부채, 대비 등은 전 조선 각지는 물론 외국에까지도 다수히 수출됨은 일반이 다 아는 바이다”라는 기사가 있다.
나주는 근대까지 이처럼 죽제품의 주요 산지였으며, 조선 최고의 부채 산지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 또한 죽제품이 발달한 지역 및 기술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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