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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 들춰보기: 명성 높았던 나주부채 문화 들춰보기에 앞서 -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부학회장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허북구
  • 기사등록 2021-07-01 08: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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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날씨가 더워짐에 따라 부채선물이 많아지고 있다. 부채는 손으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이다. 여름철에 바람을 일으키고, 얼굴 가리개, 의식용, 장식용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부채는 선풍기, 에어컨 등 각종 냉방기구가 출시되어 있고, 피부에 닿자마자 시원해지는 냉감섬유 등 최첨단 기기와 냉감 소재가 유통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부채는 ‘부치는 채’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부치는 채’가 줄어서 된 말이다. 부채라는 이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려 시기에 송나라 사람 손목(孫穆)은 『계림유사 鷄林類事』에서 우리말의 부채를 표기하여 ‘선왈부채(扇曰厄采)’ 라 하였다. 16세기 조선 중종 때 사람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와 한호(韓濩)의 『천자문(千字文)』에는 ‘선(扇)’ 을 ‘부채션’ 이라 하였음을 보아 고려 및 조선시대에도 부채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채의 역사는 동서양 모두 매우 오래되었고, 생산지도 많았다. 조선 시대 부채의 주요 산지는 대구, 나주(남평), 남원, 담양, 진주, 전주, 통영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주와 나주 남평(南平)에서 만든 부채가 가장 질이 좋았다는 내용이 『동국세기』 등 여러 고문헌에 나타나 있다. 

 

고문헌에 나주와 함께 부채 명산지로 기록되어 있는 전주는 부채의 무형문화의 전승에 힘쓰고 있다. 전주에는 ‘전주부채문화관이’ 건립되어 있으며, 전주부채의 제조 기술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扇子匠)」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라북도에서도 1993년에 전주의 합죽선(合竹扇)과 태극선(太極扇) 분야의 기능보유자를 전북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하여 전통이 끊이지 않게 하고 있다.

 

나주부채의 우수함은 문헌 기록뿐만 아니라 유수의 국내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산 나주의 부채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그 명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나주부채에 대해 나주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한 자료는 거의 없고, 나주부채의 명성은 희미해지고 있다. 나주에서조차 나주 전통부채의 흔적은 발굴되지 못한 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부채 명산지였던 나주에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원시적인 에너지 생산 도구였던 부채와 같이 에너지로 사용되는 전기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한국전력본사가 이전해 왔다. 시대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나주부채의 쇠퇴 또한 역사의 한 흐름임을 극명하게 인식케 해주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뿌리와 스토리에 대한 탐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뿌리와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나주 전통 부채문화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와 활용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가치를 보존하고, 자원 확보와 비축이라는 관점에서나주 전통 부채에 관한 논의 촉진, 자료 수집, 무형문화 유산의 전승 등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전통 나주부채의 문화에 대해 들춰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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