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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4.19혁명을 기억하는 일 - 서부보훈청 보훈과 박수지
  • 기사등록 2021-04-19 17: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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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전남서부보훈지청에서는 4·19혁명기념일 계기‘줍깅’행사가 열렸다. ‘줍깅’이란  쓰레기줍기와 조깅을 합친 말로 청소년들이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주위를 탐방하며 쓰레기를 줍는 봉사 활동이다. 


약속 시간이 되자 목포시 평화광장 달맞이공원 내에 위치한‘4·19민주혁명기념비’ 주위로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 봉사활동의 궁극적 목표인 4.19혁명의 존재와 그 의미를 느꼈다면 그것만으로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이라 생각하며, 무거운 아침잠을 기어이 몰아내고 온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다가오는 4·19혁명과 관련된 배경 설명에 뒤이어 참배가 진행되었다.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이 개최되고 학생들은 광장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교과서와 매체에서 접했던 그 날의 기억을 하나하나 주워 담기 시작했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의 재임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승만 정권의 후계자인 이기붕과 야당 후보인 장면의 부통령 선거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헌법에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집권당이었던 자유당 정권은 그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3.5인조 공개투표, 완장부대, 죽은 사람 선거인 명부에 올리기 등의 결과 장면 후보가 180만, 이기붕 후보가 840만 표를 얻었다고 발표되자, 민심은 폭발했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이 앞장서 “불법선거 다시 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이승만 정권을 규탄하기 시작했다. 시위 도중 눈에 최루탄이 박힌 고등학생 김주열의 주검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고, 4월 19일, 3만 명이 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후에는 규모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25일에는 대학교수 300여 명이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하는 제자들을 지지하면서 서울 시내를 행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하와이로 망명하고, 허정 임시정부가 들어서면서 4·19혁명은 그 끝을 맺었다.

 

이 혁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냄과 동시에 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위대한 출발점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학생들은 시작할 때와 비슷하게 하나둘 집결장소로 다시 모여들었다. 


그러나 처음과 다른 점은 광장 곳곳에 떨어져 있거나, 작은 나무 밑에 숨겨진 각종 쓰레기들을 담은 봉투를 손에 들었다는 점이다. 


봉투 안에 담긴 것은 버려야 할 쓰레기이지만, 쓰레기를 주우면서 총칼에 쓰러져 간 그 날의 영령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 보는 시간은 결코 그 가치가 헛되지 않음에 이 행사의 의미가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한 시대의 결과물을 다시금 되새기며,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만이 현재를 누리는 우리의 책임이자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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