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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주 둘러보기: 호남 의병의 햇불 김천일 선생을 기리는 곳, 정렬사 -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연구사업팀장 김대국
  • 기사등록 2021-01-14 08: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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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대호동 동신대학교 옆에는 정렬사(旌烈祠)가 있다. 정렬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金千鎰, 1537-1593)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우(祠宇)이다. 김천일 선생은 명종 대와 선조 초의 유학자인 이항(李恒)의 학문을 잇는 성리학자였고, 선정을 베푼 문신이었다.

 

나주 출신인 김천일 선생은 용안현감, 강원도. 경상도 부사, 사간원 지평, 임실현감, 담양부사, 한성부서윤, 수원부사를 역임 후 낙향했다. 고향에서 지내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에 고경명, 박광옥, 최경회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수원과 강화도, 한강 연안 등지에 거점을 두고 크게 활약했다. 왜군이 남쪽으로 퇴각하자, 절도사 최경회 등과 함께 진주성으로 달려갔다.

 

1593년 10만에 가까운 왜군의 대공세가 있었던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했다. 학자였던 김천일 선생은 임진왜란 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라, 충청, 경기, 경상 4도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에서 2년간을 거침없이 의병 활동을 해 장군으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

 


나주의 선비들이 김천일 선생의 이러한 충절을 기념하여 관내 서성문밖 월정봉 아래에 사우를 세우자 선조 39년(1606) 나라에서‘정렬사(旌烈祠)’라 사액하였다. 이어 1607년에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와 순창의 화산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고, 1621년 임실의 학정서원(鶴亭書院)에, 1685년 태인의 남고서원(南皐書院)에 제향되었다.

 

조선 고종 8년(1871년) 3월 흥선대원군 서원 훼철 정책에 의해서 김천일 선생이 순절한 곳에 있던 진주 창렬사만 보존되고 나머지는 모두 철폐되었다. 김천일 선생에게는 숙종 7년(1681년) 영의정에 추서되면서 문렬공(文烈公) 시호가 주어졌다. 정렬사는 1894년에 현재의 위치에 재건립되었으며, 김천일 선생과 김상건, 양산숙, 임회, 이용제를 함께 배향하고 있다. 매년 기병일인 음력 5월 16일에 추모 제향을 지내고 있다.

 

정렬사에는 사우(祠宇) 외에 정렬사비, 정렬사유허비, 김천일선생 동상, 유물관이 있다. 유물관에는 나주출사, 독성산성 유진, 양화진 전투, 진주성 전투 등 4개의 대형 전투화를 비롯해 책들이 전시돼 있다. 

 

■ 정렬사

위치 : 나주시 대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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