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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주 둘러보기: 나주읍성 북쪽 문, 북망문 -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연구사업팀장 김대국
  • 기사등록 2021-01-03 1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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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복! 상위복! 상위복!

역사 드라마에서 임금이 승하하고 임금과 가장 가까이 있는 내시가 임금의 웃옷을 벗겨 왼쪽으로 매고 동쪽 지붕 처마로 올라가서 임금의 옷을 흔들면서 하는 말이다.

 

상위복(上位復)이라는 단어를 북향하여 동쪽으로 세 번 흔들며 외친다. 북쪽은 죽음을 뜻하고 동쪽은 생명을 뜻한다. 내시가 임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북쪽으로 간 영혼을 다시 동쪽으로 불러들이는 행동이다. 살아생전 옷의 냄새를 맡고 다시 생명을 뜻하는 동쪽으로 돌아오라는 뜻이다.

 

방위의 상징성과 그에 스며든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일까 나주읍성 북문인 북망문(北望門)은 임금이 계신 북쪽으로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서울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많은 읍성과 각각의 이름을 지닌 북문이 있다. 왜 나주에서만 북문을 임금과 연계시켰을까? 나주가 충심의 도시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해석상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었을까? 보충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나주읍성의 북망문과 같은 한자 이름을 가진 문은 중국에도 있다.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샹양시(襄阳市) 난장현(南漳县)에 있는 춘추채(春秋寨)의 북문이 그것이다. 춘추채가 있는 곳의 지형은 나주 동강 느러지 전망대에서 바라다보이는 한반도지형과 매우 닮았다. 한반도지형처럼 강물이 둘러싸인 곳의 산 정상에 만들어 놓은 요새가 춘추채이다.

 

춘추채는 멀리서 보면 만리장성의 한 부분과 같이 보이며, 성안에는 150개 이상의 석조 가옥이 있다. 이 요새(마을) 이름은 관우(關羽, ?~219)가 야망을 품고 중국의 역사서인 『춘추(春秋)』를 공부한 후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대 별장으로도 꼽히는 춘추채는 전쟁과 도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지어졌다. 춘추채의 북망문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은 매우 아름답고, 적의 침입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나주읍성 북망문은 2008년 나주읍성 4대문 가운데 마지막으로 복원되었다. 복원된 북망문의 성문인 문루와 성문의 방어시설인 옹성의 길이는 총 71m에 이른다. 옹성을 갖춘 북망문의 성문을 열고 들어가 천장을 보면 북쪽을 상징하는 사신인 현무가 그려져 있고 바탕색으로 북쪽의 색인 흑색이 그려져 있다.

 

성문은 옛 문헌에 따라 무지개 모양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오른쪽 성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문루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을 오르면 성밖 풍경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북쪽 처마 안쪽에 상량문 편액이 있는데 2018년 11월 복원되었다는 글이 쓰여 있다. 북망문 옹성 밖에는 해자(垓字)가 있는데 물길은 있어도 물은 채워져 있지 않다.

 

북망문 밖에는 삼층석탑(보물 제50호)이 있었는데, 1915년 옛 나주 군청 내로 옮겼다가 2006년에 북망문 인근에 있는 심향사 경내 미륵전 앞으로 옮겨져 있다.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조한 읍성에서 4대문은 성내와 성외 간의 소통 통로였다. 시대가 변해서 고유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성내외를 넘어 각계 각 지역과 계층, 세대간 및 역사와의 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주읍성 북망문의 소통이라는 상징성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 북망문

위치 : 나주시 성북동

안내 : 연중 무휴 / 자유관람

정보 : 인근 심향사에 북망문 밖 삼층석탑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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