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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장 한범덕 신년사
  • 기사등록 2020-12-31 11: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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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청주시민 여러분!

존경하는 청주시청 가족 여러분!

신축년 올해는 진심으로 모두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한, 운이 다한 늙은 어부가 있었습니다.

85일째가 되던 화사한 날 그는 희망을 품고 바다로 향했고, 결국 자신의 배보다 큰 청새치를 사흘 밤낮에 걸친 사투 끝에 잡았습니다.

 

그런데 700kg은 족히 되는 놈을 배에 붙잡아 매고 돌아오던 길에 그만 피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떼에게 고기의 살점을 모두 빼앗기고 맙니다.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고기 한 점 남지 않았고 몸만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할 말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저 고기에게는 지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그에게는 목숨 바쳤을 사투를 이해하며 울어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인 산티아고 이야기입니다.

 

어느덧 익숙했던 일상을 닫고 바이러스와 싸워온 지 300일 하고도 열 닷새째가 되는 날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소설 속 산티아고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청새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가정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평화로운 날들을 그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회가 현실을 바꿀 수는 없고 좌절은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고, 희망이 없다는 것은 죄악이라는 노인의 말대로 나아질 내일에 대한 희망만이 오늘을 극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매 순간 소년과 같이 보듬고 울어줄 서로가 함께 있습니다.

 

그를 노래한 김종삼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함께 화사한 날을 꿈꿀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아온 기적은 다시 살아갈 의미가 되고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고 별은 더 빛나는 법입니다.

청새치 뼈만 달랑 매고 포구에 들어와서도 지지 않았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도 결국, 바이러스와의 이 길고 긴 싸움을 기적처럼 이겨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85만 청주시민 여러분!

1년 전 오늘 저는 새해 인사를 통해, 시민 여러분의 매일이 기적과 같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관계는 병들고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벼락같이 찾아온 재난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의 눈부신 헌신과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공직자의 수고, 시민 여러분 모두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연대와 동행의 발걸음,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매 순간 놀라운 기적을 쓰고 있습니다.

 

BBC에서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록의 가장 첫 번째 자리는 숨은 영웅들이 차지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적이 되는 우리 모두가 영웅이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지난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1년 전 그날로부터 다시 365, 함께 웃는 청주가 출발한 지

915일이 되는 날입니다.

 

당장 눈앞의 바이러스와 싸우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위기를 희망으로 이겨낸 뒤에 맞게 될 새로운 날에 대한 준비도 빠트리지 않고 해야 합니다.

 

오늘의 시련이 어디에서 왔고, 오늘의 위기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며, 내일의 우리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지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운명은, 바이러스가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시 한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커다란 질문과 마주해야 합니다.

 

시정연설을 통해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숨 쉬듯 당연하게 여겨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우리의 삶 곳곳에 행정의 역할이 있다는 사실 또한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를, 내가 사는 도시를, 나아가 내가 사는 나라를 지키고 가꾸는 일을 행정에 요구해야 하고, 행정은 마땅히 그에 응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민주주의 못지않게 우리가 사는 지역의 기본을 세우고 가꾸는 공무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다 근원적이고 어려운 질문은, 어떻게 관계를 회복하고, 어떻게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가능하게 할 것이냐는 물음일 것입니다.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과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만난 사람과 자신이 겪은 일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비로소 나를 구성합니다.

사람과 일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청주의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요?

 

도시는 관계 맺는 개인들의 집합이고 개인들이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기억입니다.

 

도시를 설명하는 지표는 아주 많습니다. 인구수와 출생률, 실업률과 고용률, 문화체육시설의 숫자와 공원의 비중, 대중교통 이용률과 수돗물 음용률, 관광객 수, 주택 보급률, 청년 농업인 비율 등등

 

그런데 도시가 숫자로만 기억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도시는 그 안을 사는 사람과 사람들과의 관계로 정의됩니다.

 

누군가는 청주를 떠올릴 때 첫사랑, 첫 직장, 첫 아이를 연상하며 첫 경험을 선물한 도시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청주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상실의 도시일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청주가 32년을 살인범으로 살아온 인생에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준 형님과 누이의 도시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도 청주는 부모이자 오랜 벗이고, 무엇보다 시민 여러분이 떠오르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정책을 나타내는 어떤 단어들, 예를 들면, 복지, 고용, 문화, 청년, 주거 등, 이러한 언어들로부터 연상되는 것은 수치와 지표가 아니라 이 땅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여야 합니다.

 

저는 청주시가 이런 다양한 관계들이 따뜻하게 맺어진 도시라면 좋겠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환경과 인간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려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원칙과 각오로 청주시의 정체성을 세워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의 화두는 어울려, 다시, 함께입니다.

 

어울려 사는 것은 서로 어우러져 고락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생태계 안에서 자연과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선 7기 출범 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환경 현안과 함께 해왔습니다.

미세먼지는 대기를 뒤덮었고, 사업체 소각장의 수는 전국에서 제일 많았습니다.

생활 쓰레기 배출량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불명예도 있었습니다.

 

올해에도 청주시는 환경 관련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습니다.

친환경 에너지 보급에 힘을 쏟고 다른 지방정부와 연대하여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습니다.

도시생태축을 복원하고 대기 및 수질오염 총량제도 빈틈없이 관리해서 생태계 복원에도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쓸 자원을 분류하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일은 가장 큰 현안입니다.

 

재활용 선별시설과 음식물류폐기물 자원화시설 등 자원순환 시설에도 투자하는 한편, 다양한 자원재활용 시범사업을 통해 자원순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감염병 위기의 시대에 배달 음식 등의 증가로 늘어난 생활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 등도 지속해서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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