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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문을 간지럽히는 해충, 요충 - 글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
  • 기사등록 2020-12-24 11:5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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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생충


천안시 구성동에 사는 김모 여인은 여섯 살 아이의 팬티를 갈아입히다 깜짝 놀랐다. 처음엔 휴지조각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 물체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뭐야?” 길이 1센티 정도의 하얀 물체, 그건 분명히 기생충이었다. 그때서야 아이가 요즘 부쩍 항문이 가렵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인터넷에 ‘항문, 가려움, 벌레’를 넣고 검색했더니 요충이란 단어가 뜬다. 요충, 언제 한번 들어본 적이 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원생이 요충이었다던가. 요충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생충이다. 회충과 편충을 비롯해 인체에 사는 대부분의 기생충이 다른 똥물에서 건너와 진화된 것인 반면, 요충은 다른 네발짐승에는 없는, 사람만의 고유한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도 유ㅛ충은 자신만의 특징이 있으니, 그건 남다른 모성애다. 회충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 몸에 기생하는 회충은 짝짓기 후 낳은 알을 대변에 섞어 밖으로 내보낸다. 그 알이 흙속에서 2주 정도 발육하면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는 성숙란이 되는데, 문제는 그 알들이 사람에게 들어오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사람의 똥을 비료로 쓸 때는 사람 입으로 섭취되는 게 가능했지만, 요즘은 회충알이 사람에게 들어오기 쉽지 않다. 실제로 대변을 통해 배출된 회충알 대부분은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모성애의 화신인 요충은 이런 게 부모가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알을 사람의 입에 넣어 줄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게 된다. 계획은 다음과 같다. 1단계, 몸에 가득 알을 채운다. 2단계, 사람 몸 밖으로 나간다. 3단계, 알을 낳는다. 4단계, 그 알을 사람 입에 넣어준다.

 

요충의 공략 대상은 어른보다 아이들이다


먼저 1단계. 회충, 편충과 달리 요충은 만든 알을 몸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대신, 자기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1만개 정도의 알이 요충의 몸을 가득 채웠을 때, 요충은 2단계에 돌입한다. 사람으로부터 나가려면 입이나 항문으로 가야 하는데 요충이 사는 부위인 맹장에서는 항문까지의 거리가 훨씬 가깝다. 물론 1센티에 불과한 요충이, 또 만삭의 몸으로 2미터 남짓한 거리를 가는 게 쉽지 않지만, 요충은 어렵사리 항문까지 간 뒤 항문이 잠깐 열리는 틈을 타 엉덩이로 나온다. 3단계. 요충은 금지옥엽처럼 보관했던 알 1만개를 항문 주위에 뿌린다. 이제 4단계가 남았다. 요충은 고민했을 것이다. “이 알을 어떻게 사람 입까지 운반하지?”지략이 뛰어난 요충은 결국 해법을 찾아냈다. 자신이 직접 옮길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운반하게 하자. 요충은 그래서 항문 주위를 돌아다니며 항문을 간지럽히는 물질을 분비한다. 요충이 꼬물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려운데, 분비물까지 더해지면 사람은 항문을 긁을 수 밖에 없다. 그때 항문에 있던 알이 사람 손에 묻고, 그 손으로 무언가를 먹으면 요충알이 사람 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방법으로 요충은 자신의 남다른 모성애를 실천했다. 문제는 요충이 왜 하필 아이들을 주 타깃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기생충학을 전공으로 배울 당시, 요충의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약자에게 강한 기회주의자의 전형으로 여겨져서였다. 하지만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오래 전만 해도 사람이 항문을 긁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문명의 발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항문 주위를 긁는 것을 더러운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팬티 속으로 손을 넣어 항문을 긁는 대신, 남들 눈치를 보다 옷 위로 긁거나, 의자 모서리를 이용하게 됐다. 어느 경우든 요충알이 사람의 입으로 전달되지 못한다. 요충이 아이들을 주 공략 대상으로 삼은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이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팬티 속에 손을 넣어 항문을 긁고, 그 손으로 과자를 먹거나 손가락을 빨기까지 하니 말이다.

 

약에 매우 취약하다


다행히 요충은 구충제에 아주 잘 들으며, 저항성이 보고된 바는 아직까지 한 건도 없다. 그런데도 “구충제를 먹었는데 요충이 없어지지 않아요.”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건 몸 안의 요충이 안 죽어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요충이 재감염된 탓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항문을 긁은 손으로 식탁을 탁 하고 내리쳤다면, 손에 있던 알들이 식탁에 뿌려지고, 그 알들은 최대 한 달가량 감염력을 유지한 채 사람의 입속에 들어갈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아이가 다니는 시설에 감염자가 있다면, 그를 통해 계속적인 감염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요충을 치료할 때 유치원이나 학교 등등 아이와 접촉하는 모든 학생을 동시에 치료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요충에 걸렸다는 게 그 아이가 평소 지저분하다든지 가까이해선 안될 사람이란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충은 약에 아주 잘 들으니, 요충을 빌미로 그 아이를 유치원에 못 오게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항문 가려움증 중 요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가렵다고 무조건 요충을 의심하지 말고 다른 원인이 아닐까 먼저 의심해 보자. 요충 감염이 아닌데 구충제만 계속 먹는 건 아이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발췌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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