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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국화빵/조기호
  • 기사등록 2020-05-17 09: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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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숙주宿主였다

낡은 브라더 미싱을 붙잡고

밤마다 마른 관절 마디마디를 꿰매시던 어머니는

종무소식인 아버지를 끝내 찾지는 않았지만

헝클어진 실타래를 이빨로 잘근잘근 풀어낼 때면

가는 봄 오는 봄의 그 구슬픈 언덕배기에

‘징한 놈’ ‘무지한 놈’을 냅다 패대기치곤 했었다.

 

밥상머리마다 올려지는 장아찌와 멸치대가리와

한사발의 보리누룽지를 마시며

나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어머니는 고질을 앓으셨다

 

두통이 심한 날이면

바느질을 할 수 없는 어머니는 빈털터리가 되었고

나는 가게를 들를 수 없어서 불쌍했었다

아니, 노릇노릇 냄새를 피우는 국화빵이 유난히 컸었으므로

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어떤 날에도 어머니는 절대 아프지 않아야 했고

부지런히 미싱은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 앞 제수당 약방으로 뛰어가

토끼표 APC 알약을 곧장 어머니 앞에 내 밀었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하늘을 보며 약을 털어 넣으셨다

마침내 헝겊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 맨 미싱이

드르르 돌아갈 무렵이면 슬며시 가게 문이 열리고

뜨뜻하게 국화빵이 구워져 나와 나는 마냥 즐거웠고

그럴 때면 바늘에 손을 찔리며 눈살 찌푸리던 어머니는

미싱 바퀴에 기름칠을 하면서 넌지시 웃기도 했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노래하던 동백아가씨는,

아니 국화빵 속에 노곤한 어깨를 파묻고 고꾸라져 잠들던

어머니는

숙주宿主였다

찬바람 쌩쌩 부는 한겨울에도

날마다 한 봉지의 꽃을 피워내야 하는

가난한 세월의 모퉁이, 어느 철없는 조무래기 국화빵의

 

조기호 【약력】

 

▪ 광주일보(84) 및 조선일보(90) 신춘문예 동시 당선

▪ 전남시문학상, 목포예술상 수상, 열린아동문학상

▪ 전남시인협회부회장, 목포시문학회장, 목포문인협회장 역임

▪ 동시집 <숨은그림 찾기> <반쪽이라는 말> 외 출간

▪ 「목포문학상」 운영위원

▪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동시창작’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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