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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기탁 도자기 논란, 이제는 종식 되어야
  • 기사등록 2016-09-17 11:47:49
  • 수정 2016-09-17 11: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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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우리가 고흥군에서 발견한 한 쌍의 원청화 운룡무늬 화병은 영국 데이비드 중국 예술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는 화병과 입구모양이 같습니다.


원나라 경덕진 장인의 걸작으로 보기 드문 명품입니다. 중국 수집가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 한국 고흥군에서 이러한 보물이 발견된 것이 조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고흥군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한편으로 매우 기쁘기도 합니다.(허명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고흥군은 국내 최대의 분청사기 생산 요지인 두원면 운대리 일원에 고흥분청사기 박물관(가칭)을 2017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속도를 내왔다.

 

공립박물관 형태의 이 박물관은 분청사기 전시관, 고흥 역사문화관, 설화 문학관과 함께 동아시아 전시관도 별도로 마련됐다.

 

여타의 박물관과는 다르게 차별화 전략으로  동아시아 도자기 전시관을 구성해  기탁 받은 중국도자기 300점에 대한 전문가 들의 '감정소견' 발표회를 갖은바 있다.

 

그러나 감정소견 발표이후 "여수mbc방송사와 소수 언론사로부터 진위여부 시비에 휘말려 고흥군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됐다"고 진단되고 있다.

 

거기다 '중국고대황실도자기' 3,000여점을 기탁에 나선 민종기(행정법무연구원장)씨도 수십년간 쌓아온 명예와 신용도가 동반 훼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결국 이사건은 시민단체는 고흥군을 상대로 민종기씨는 언론사와 의혹제기에 나선 네티즌들을 상대로 양방간 고소 사건으로 번졌다.

 

하지만 이사건에서 팩트는 뒷전이고 지자체가 발전모델로 삼고자 했던 차별화 전략은 언론의 비판성 보도에 떠밀려 동력이 상실된 상태다.

 

이와 관련 심각한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 민종기 행정법무연구원장이 최근의 상황을 전해왔다.

 

언론에 가짜시비를 불러 일으킨 당사자들은 특정한 목적을 갖고 기탁도자기에 대해서 폄하와 왜곡을 지속적으로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 특정한 목적은 중국민요 도자기를 비싼값에 팔아치운 파렴치한 상인들이 콜리티가 높은 중국황실도자기 출연을 꺼려해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악의적으로 왜곡에 나선 이 사람들과 이에 편승한 언론사를 상대로 언중위 제소와 민.형사상 고소를 하게된 심경을 피력했다. 

 

특히 이 사건은 단순히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아니고 국적을 떠나 인류의 문화유산을 전시하여 공공의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 공영박물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여서 일반적 명예훼손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고흥군에 전시될 국보급 고대도자기의 주된 생명은 "신비로움과 역사성 희소성"을 뒤받침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짝퉁.신작. 공예품"으로 낙인찍어 "국보급 보물이 지닌 모든 생명력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한 범죄행위"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고흥군 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중국 도자문화를 '당.송.명.청대'시대별로 전시해 주된 고객층이 중국관광객"이며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될 특수성을 지닌 전시공관이였다"며 관광객 유치에 심대한 타격은 물론이고 지역의 이미지와 개관도 하기전인 박물관의 신뢰도 역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혔다고 거듭 주장했다. 

 

현재까지 나타난 사실만으로도 고흥군은 "공영박물관에 개관에 필요한 정상적인 업무추진이 불능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며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한 네이버 카페 0000  주인을 비롯한 회원들이 수십회에 걸쳐 “중국감정인들을 사기꾼,국보방의 수괴, 10대 사기꾼 해당”등의 악성 댓글들을 "집단적, 지속적, 다발적"으로 게재하여 국내는 물론 중국에까지 삽시간에 번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는 것이다.

 

또 이들의 주장을 일부언론이 무책임한 글을 인용포장하여 보도 및 방영하는 한편 위에서 언급된0000 까페는 보도된 내용을  다시 올리면서 명예훼손. 신용훼손의 범죄가 확대 재생산 되어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고흥군과 기탁자인 자신의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조사와 더불어 법의 엄중한 판단을 구해서 다시는 이러한 악의적 행태로 인해서 막대한 국제경쟁력 훼손을 초래하는 범죄행위는  차단되어야 한다고 덧 붙였다. 

 

한편 중국측 감정가중 한사람인 허명교수는 자신과 더불어 감정에 참여한 뢰종운. 구소군씨의 중국내 감정분야 신분에 대해서 밝혔다.  이점은 감정가들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한 해석으로 보인다.

 

아래는 허명교수의 감정소견 내용 전문이다.

 

중국문화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에게 중국 고대 도자기를 소개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레이총윈(雷從云) 교수님과 추샤오쥔(丘小君) 교수님은 도자기 학문과 감정분야에서 매우 명성을 높은 분들로, 저 역시 이 두분을 크게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국 고대문화 학자로서 1988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땄지만, 중국 고대자기의 수집가이기도 합니다. 이미 수집을 시작한지 30년이 다 되었네요.


 2012~2013년까지 한국외대에서 방문교수를 담임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한국의 수집가들과 폭넓게 교류했고, 한국 수집업계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중국 고대도자기 애호가들이 있지만,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한국 수집업계가 중국시장 경매가격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2년, 서울에 중국문물을 취급하는 골동품점이 100여 곳이나 생겼었지만, 최근 서울 답십리 골동품거리에 가보니 중국문물을 취급하는 곳이 겨우 2~3곳 남짓이었습니다.


한국 수집가와 취급업자들은 중국의 역사, 풍속, 현황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중국에는 역사기록이 남아 있는 것 중에 5000여 년 전 문물이 존재하며, 최근에는 8000년 전 문물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는 ‘음’과 ‘양’이 모두 중요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부장품을 같이 묻고, 신분이 높을수록 그 수도 많아집니다.


최근 발굴된 해혼후묘(海昏侯墓)의 부장품이 2만 여 점에 달하는 이유는 무덤 주인의 높은 신분뿐만 아니라, 5000년 동안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왕조가 바뀌면서, 많은 유파의 귀족들이 보물을 땅에 묻거나 굴에 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개혁개방 30년 동안 10만km에 달하는 고속도로 건설, 고속철도 건설, 남쪽의 물을 북쪽으로 보내는 남수북조(南水北調) 사업, 일부 농민들의 도굴로 인해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보물이 대량 발견되고 중국시장 심지어 한국에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이 중국 국내의 전통문화산업계, 골동품업계, 상점, 경매업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고대 예술품은 희소성이 있습니다. 전세계에 원청화(元靑花)가 300점, 송나라 여요(汝窯)가 67점, 청나라 법랑채기(琺琅彩器)가 400여 점, 명나라 성화투채계항배(成化鬪彩鷄缸杯)가 겨우 4점 남아있습니다.


물론 전세계 경매회사들은 세상에 남아있는 수량에 따라 가격을 매깁니다.
예를 들면, 작년 홍콩에서 경매된 성화투채계항배 1점이 놀랍게도 3억 홍콩달러, 달러로는 4천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요? 현존하는 5점 중 4점이 모두 박물관에 있고, 이 1점만이 유일하게 민간에서 유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업계나 경매자들이 물건이 적어야 높은 가격이 팔린다고 하는지, 왜 그들의 감정기관들이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물건을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는지 여러분들도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골동품 시장에 유입되는 중국고대 문물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상대적인 것입니다. 중국 14억 인구에 비해 아직은 매우 적은 편이니까요.


한국 수집가들은 2011~2012년경 한국에 들어오는 신·구 예술품이 대부분 값이 나간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중국문물 수집열풍이 불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수집가들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왜 물건이 점점 많아지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앞서 답변을 드렸습니다.


둘째, 왜 한국에 오는 중국 감정사들의 관점이 다를까? 같은 물건인데 어떤 이들은 진품, 어떤 이들은 가품이라고 하니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고대 예술품이 일단 시장에 들어오면 바로 이익과 결부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전문가가 과거 전세계에 원청화는 겨우 300점 남아있다고 발언했는데, 301번 째 물건이 있다고 인정하고 싶을까요? 더 객관적인 이유를 들자면, 과거 한번도 출토된 적이 없던 새로운 종류의 문물이 대거 세상에 나왔지만, 많은 감정사들이 이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진품이 인정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 유입된 중국 고대도자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한국생활 1년과 고흥군 중국도자기 박물관 건설문제로 고흥군을 3차례 방문한 결과 다음의 네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 한국시장에는 많은 중국 도자기 진품과 많은 경덕진(景德鎭) 모조품이 존재합니다.

 
중국 감정사들이 새롭게 출현한 도자기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놓고, 이로 인해 중국 세관은 해외로 나가는 공예품들의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워 그냥 통과시키기 일쑤입니다.


한국시장은 이 때문에 이득을 보았고, 컨테이너에 실린 도자기가 중국 단동(丹東)에서 서울로 매일 유입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춘추전국시대의 청자, 당삼채(唐三彩), 송나라 5대 명요(名窯), 원청화, 원나라 채색자기, 명·청시대 관요자기(官窯瓷器)가 한국시장에 대거 출현했고, 일부는 매우 진귀한 것들입니다. 물론 가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경덕진 모조품 역시 대량 들어왔고, 상당히 잘 팔리고 있습니다.


둘째, 감정이 일관되지 않아 한국 수집가들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2012년 중국의 여러 감정단체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서울의 같은 지역에서 파가 둘로 나뉘어 동시에 감정을 진행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진품, 저쪽에서는 가품으로 감정을 내린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2013년에 중국 감정가들이 서울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중국 도자기를 취급하던 상점도 대거 문을 닫았습니다.


이번에 우리 세 사람은 고흥에서 고르고 골라 믿음이 가는 중국 도자기 전문가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고흥군에서 오히려 우리에게 이에 대한 라이선스를 요청했고, 찾아낸 전문가의 신용을 걱정했습니다.


물론 왜 그랬는지 이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더더욱 제대로 해야 하고, 한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셋째, 시장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활황세였던 중국 고대도자기 시장이 현재는 침체기를 겪고 있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입니다. 수량이 분명하지 않으니 감정에 혼란이 있고, 시장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구매자들이 필사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중국 고대도자기의 수가 많다고 해도, 명품은 매우 적으니까요. 이러한 점을 일반 수집가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명품일까? 명품의 기준이 무엇일까? 명품은 일반 예술품 대비 얼마나 큰 비율을 차지할까? 이 모두 여러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최근 몇 년 간 타이완을 여러 번 다녀왔고, 타이완 수집가들과 원청화의 등급문제를 연구했습니다. 우리 양안의 수집가들 모두 소장품에 반드시 등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원청화의 경우 일반품이 많고 명품이나 최상품은 극소수이기 때문입니다. 최상품은 값을 매기기 힘들 정도의 보물을 일컫습니다.


우리가 고흥군에서 발견한 한 쌍의 원청화 운룡무늬 달항아리는 영국 데이비드 중국 예술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는 화병과 입구모양이 같습니다.


원나라 경덕진 장인의 걸작으로 보기 드문 명품입니다. 중국 수집가의 한 사람으로서, 멀리 한국 고흥군에서 이러한 보물이 발견된 것이 조금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고흥군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한편으로 매우 기쁘기도 합니다.


원청화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먼저 예술성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는 아름다움이 첫 번째입니다.


고대도자기는 대부분 일상용품이었기 때문에 특별함을 지녀야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전해내려 온 경위는 사실 우연적 요소가 많습니다.


등급기준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서도 원청화의 등급을 매기기 쉽고, 한국에서 최상품으로 책정한 청화자기를 되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들이 예술성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는다면 일이 좀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관점으로 시장을 대한다면, 중국 문물 중 명품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물건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못 알아봐서 문제겠지요. 명품과 일반품을 구분해 놓아야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넷째, 한국의 중국 골동품열풍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한국에 있는 1년 동안 한국인들이 중국문화를 얼마나 좋아하고 친밀감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중국 골동품 특히 고대도자기 수집이 일부 사람에게는 일상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이들을 위해 한국 최초의 공립형 중국 도자기 전시관을  지으려고 하는 고흥군에 중국학자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중한 양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어 땔래야 땔 수 없습니다. 중국 고대문화가 대형 박물관에서 전용관 형태로 전시되는 경우는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이어 이제 대한민국 고흥에서도 개관됩니다.


고흥군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도자기 감정대상 300여점의 대부분은 의심할 바 없는 진품입니다. 물론 명품, 특히 최상품은 소수이지만 당연한 일이고, 중국에서도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일부 중국 수집가가 오래 전에 명품을 선점했기 때문에 개인 소장품 중에 명품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명품과 일반품을 구분하지 못해 명품을 소장하기 어렵긴 합니다.


고흥박물관이 한중 양국 수집가의 도움 아래 중국관을 활성화시키고,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16년 7월 쉬밍(許明) /  상하이사회과학원


감정가 소개 


뢰종운(雷从云) / 前 국가문물국 연구원
1939년 8월 14일생, 중국 충칭시 장수구인
경력이 풍부한 문물전문가, 주요로 중국고대 옥기, 고대도자기와 청동기연구와 감상.
1959년 8월 - 1964년 7월 북경대학교 역사학과 고고학전공 학사졸업.
1964년 8월 – 1972년 1월 중국 문물박물관연구소(현 중국문화유산연구원) 근무
1972년 2월 – 1980년 2월 중국역사박물과(현 중국국가박물관) 통사(通史)진열부선진(先秦)조에서 진열전람과 문물고고(考古)연구를 하였다.
1980년 2월 – 2000년 12월 중국문물교류센터에서 해외문물전람업무, 문물연구와 관리업무를 하였다.
2001년 퇴직, 중국국가박물관에 귀속되었다.
이 기간, 문물고고(考古)와 역사학연구, 역사문물진열과 해외문물전람업무를 하였다.
1986년, 국가문물국 고급직함평가위원회에서 부연구원에 임명
1993년, 국가문물국 고급직함평가위원회에서 연구원으로 임명.
1993년 9월 국무원[중화인민공화국의최고행정기관]에서 “특수공헌전문가상”을 수여를 받으며, 평생 국무원에서의 지급한 특수보조금을 받게 되었다.
1980년 후 21년 동안, 아시아, 유럽, 미국, 호주등 20여 개국과 지역에서 개최한 60여 항의중국문물전람을 주최, 참여하였으며, 학술세미나, 강연회를 수 십차례를 협동전람 하였다.
그리고 200만부가 넘는 전람도록 수십종을 출판하였다.
본인은 업무팀, 학술팀, 대표팀의 구성원으로서 2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업무와 문화활동을 30여 차례를 참가하였다.
동시에 미국워싱턴주의 명예시민과 미국연방 The Honorable Order of Kentucky Colonel 수상자.
퇴직후, 문물연구와 문물검증의 업무와 문박(文博)문화활동의 일을 해왔다.
그리고 중국은왕조(殷商)문화학회이사장, 중국고대동고(銅鼓)문화연구회이사, 중국고대도자기학회이사, 중국고대옥문화연구회부회장, 중국소장가협회상무이사, 자문검정전문가위원회부주임, 도자기소장위원회고문, 아시아주얼리협회부주석, 검정평가위원회부주석, 국제소장가협회부회장, 검정평가위원회부주석, 아시아태평양국제소장검정평가협회부주석, 북경고고학(考古學)명예이사. 중일문화협회이사, 북경대학교환경자원미술대학원초빙교수, 그리고 민간문박(文博)기관의 전문가, 고문직을 맡고 있다.
일본, 호주, 독일, 싱가포르, 미국, 홍콩, 대만등 나라와 지역에서 수차례의 문물고고(文物考古)분야의 학술강연과 강좌를 하였다.
 <황하문명전>등 대형전람도록 근 40종을 편집, 감수하였으며, 전문적인논문을 70여편 발표하였다. <서안역사의 간략서술>, <출토문물삼백점>, <중국궁전사>, <제가옥운(玉韻)>, <서북고옥(古玉)장진(藏珍)>, <자사명호(紫砂茗壺)장진(藏珍)>, <고옥공상 (古玉共賞)>과 “원대도자기의특성과검정”등 자저 또는 합저를 하였다.
특정의 학술분야에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가 있다.


전문기술직 자격 증서

국가문물국 발급 


성명: 레이총윈        성별: 남      생년월일: 1939.8
전공: 문물감정         재직자격: 연구관원
수여연도: 1993년       증명서 번호: 보(補): 200909306
2010년 12월 1일
사용설명
1. 본 증서는 국가문물국에서 동일하게 인쇄 및 날인하여
  제작한다.
2. 본 증서는 문물감정 전문기술직의 자격을 증명한다.
3. 본 증서는 전국 문물감정산업 내에서 통용된다.
국가문물국

 

감정가 구소군  

 


구소군(丘小君) / 前 CCTV 도자기 감정가(‘08∼’15)
1945년 10월생, 원적은 산동주청.
1969년 산시성 시안의 “서북대학교”졸업.
1978년 시안시 문물상점매입부주임.
1980년 – 1985년 고궁박물관원장 껑바우창씨의 초청으로 <明淸도자기검정>책자를 협조하여 60만여 자를 저술하였다.
1982년 – 1987년 산시성 문물국의 “산시성문물검정팀위원”으로 초빙됨
1985, 1986, 1987,1990년은 차례로 국가문물국중국문물본점, 세관본부, 산시성문박간부양성센터에서 고대 도자기검정교사로 지냈다.
1988년 산시성문박관원(館員)으로 초빙되었다
1992년 <중국전문가명인대사전>에 문박 전문가로 이름을 올렸다.
1994 – 1996년 홍콩지구문화학교에서 “明淸도자기검정” 특강교수
 홍콩유명소장협회 “구지아집”(求知雅集)에서 이사직과 도자기검정사로 재직하였다
2008년 중국 CCTV 프로그램중 “보물을 찾아서”에 합류하며, “고대도자기검정가”로 200여 회를 방송하며,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저작(著作)
1985년 <서안난따지에출토한야오저우요(窯)잔편연구><명홍무도자기신증>은 국가문물국에서 출판한 <문물검정소장총서도자기분책>에 실렸다.
40년동안 직접만져보고 눈으로감정한 국가박물관급의 도자기가 36만점이 넘는다, 그리고 이 36만여 점에 소장품에 대한 사진촬영, 치수측정, 요구(窯口)대조, 연대, 진위여부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청화대학교 “중국문자박물관”, “중국소장가협회양성부”와 각지의 박물관, 연구소에서 고대 도자기 초빙교수를 하였다.

 

감정가 허명 교수 

 


허  명(許明) / 상해사회과학원 교수
1949년 10월 생. 1
981년 중국사회과학원문학과 석사,
1988년 중국사회과학원문학과 박사 학위 취득.
1993년부터 국무원의 특수보조금을 받고 있다.
현 <상해사상계>잡지 편집장, 상해 사회과학원 연구원, 박사 지도교수, 상해 사회경제문화발전연구원 주임.
동시에 중국문물학회이사, 중국인민대학교박물관 특별초청 연구원, 중국소장가협회 도자기소장위원회 부주임, 중화의사(疑似)문물보호위원회 주임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고대도자기소장에 근30년째 종사하고 있으며, 터키, 이란, 영국데이비드제단, 일본도쿄미술관등 지역을 방문하며 원대 도자기를 고찰하고, 중국의 푸젠성, 안후이성, 장시성에 몇 차례를 방문하며 고요지(窯址)유물들을 고찰하였다.
전국각지에서 대형 고기물소장포럼, 전람을 십여 차례 개최 하였다.
예: 중국민간원대청화소장품세미나(2004), 원대도자기국제학술세미나(2006), 중국소장문화[開封]포럼(2007), 중국민간소장과문화산업발전포럼(2009), 엑스포를 맞이하여 중국민간소장시리즈전시(2010), 상해엑스포중화예술진품순회전시(2010), 중국대륙과대만제1회민간소장품합동전람회(2012), 2012국제원대청화세미나 등.
중국CCTV방송국 <국보파일>프로그램중 이란현지조사에 연속 4회 출연. 고대도자기논저 10여편발표,
잡지<화하심미풍상사>(華夏審美風尙史)(2003),<중국원대도자기>(2006), <민간소장중국고청동기새롭게연구하다>(2009), <2010상해엑스포, 중화예술진품전특간>, <민간소장고대도자기권(卷)>(2011), <터키, 이란관소장원대청화현지탐방기>(2007,2011재판),<대만원대청화등급소장집췌>(2016타이베이출판)등을 책임 출판하였다.
<톱카프로 향하는 몽환의길>, <원대청화진위의세기전쟁>등의 몇 가지 논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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