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제60보병사단 ‘권율부대’는 1일 100여명의 보성선씨 종원들과 부대장병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거이 연대’ 명명식을 가졌다.
권율부대는 행주대첩을 기리고 후대에 그 전과를 계승하기 위해 행주대첩 당시 부원수로서 혁혁한 공을 세운 ‘선거이 장군’을 선정해 연대 명칭을 ‘선거이 연대’라 칭하고 정문 입구에 안내판 건립, 현관 입구에 장군의 생애와 업적, 유적지와 역사자료 등을 전시했다.
초대 ‘선거이 연대’를 맡게 된 연대장ㅇㅇㅇ 대령은 “선거이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부원수 겸 전라도병마절도사(참모총장 격)로서 도원수(합참의장 격)인 권율과 함께 ‘행주대첩’을 이루는데 공을 세웠고, 바다에서도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한산도대첩’의 주역이 된 육지와 바다를 오간 유일한 인물”이라며 “선거이 장군이 이끌던 1만4000여 전라병영 소속의 병사들이 행주대첩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임진왜란의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선거이 장군의 업적을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훌륭한 전공을 세운 선거이 장군의 이름을 딴 연대를 이끌게 돼 너무 자랑스럽고 어깨가 무겁다”며 “선거이 장군의 업적을 계승할 수 있는 최상의 연대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선봉에 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은 수군통제영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다른 임지로 떠나는 선거이를 아쉬워하며 ‘증 별 선수사 거이’ 라는 시를 난중일기에 남겨 마지막으로 헤어짐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선거이 장군은 ‘부원수 겸 7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돼 임진왜란 마지막 육상전투인 ‘울산성 전투’에서 2만여 병력을 이끌고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장군을 두려워한 왜적들이 장군의 유해를 강탈해가는 바람에 시신을 찾지 못해 장군이 태어난 전남 보성군 조성 지역에서 ‘초혼장’을 치르고 가묘로 비석을 세워 후손들에게 아쉬움을 남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거이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행주대첩이 가능했다“고 기록돼 있고 예조에서 내려준 금석문(비석내용)에는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선거이라고 불렸고 그 공로가 충무공에 비견할 만 하다"라고 기록됐으나 문신들의 견제로 ‘선무공신’에는 오르지 못하고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추봉됐다.
광주시 광산구에 충신정려(솟을대문)가 있으며 고양시 행주서원, 고양시 오충사, 보성군 오충사, 장흥군 포충사 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
“고려말 선윤지를 시조로 현재 인구가 4만여 명에 불과한 단일본인 ‘보성선’씨는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모두가 한가족”이라며 애착을 보이는 선창규 대종중 회장은 “오늘 명명식을 통해 선거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부대가 생겨 조상님의 업적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돼 너무 자랑스럽다”며 “올해는 족보도 새로이 만들고 좋은 일만 계속 생긴다. 앞으로도 선거이 장군의 위업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자랑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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