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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2
  • 기사등록 2013-08-12 14: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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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비탈에 선 가지가 흔들리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은 온갖 형상을 그리며 무심코 흐르다 밀어 당기는 몸부림으로 정이 깊어지면 비구름으로 변하여 한 번에 쏟아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솜털처럼 가벼이 나르며 맺었던 사연을 순식간에 접고, 땅에서는 흙탕물로 뒤엉켜 수목들을 촉촉하게 적시기도 하고 이름 없는 계곡을 뒤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그사이 백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듯 보이던 초목들이 늘어선 언덕과 바위뿐만 아니라 사람이 애써 쌓은 구조물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지상에 펼쳐진 만물의 인과응보가 비단 바람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은 요인들로 선과악의 업보를 교차하며 제 각각의 가치를 유지해가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사람이나 짐승 또는 대자연의 품속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물질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질긴 끈이 마치 누에가 뿜어내는 비단실과 같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쉬지 않는 순환의 작용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밤하늘에 수없이 빛나는 별들이 스스로의 길과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의 점으로 빛나듯이, 지상에서도 마찬가지 온갖 모습으로 비추어 보이는 수많은 점 중 딱 하나가 바로 나의 존재인 것입니다.

마치 깊고 넓은 업보의 바다를 일엽편주와 같이 떠가는 것으로 이왕이면 항상 좋은 마음과 맑은 뜻으로 상대방을 극진하게 대해야 좋은 인연이 차곡차곡 쌓여 갈 것입니다.

날이 가면 달이가고 계절이 가면 해가 가면서, 세월 또한 무상하게 흘러갈 것인데, 그사이 인생의 힘든 오르막길이 있었다면 언젠가는 내리막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비바람 폭풍이 몰아치는 격동의 밤이 가고 나면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고요한 아침이 다가서기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다 세월의 아픔 끝자락에 가슴 떨리는 해후를 맞이하곤, 꿈같이 행복하던 순간이 지나면 가슴 저미는 슬픈 이별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도 할 것입니다.

희로애락 애오욕의 사단칠정이 부리는 만 가지 변화는 어느 하나로 볼 수도 없거니와, 또 한순간도 아니어서 끊임없이 돌아가는 자연의 이법으로 발현되는 것이요 인간사의 상정이 될 것입니다.

때로는 아프거나 슬프고 외롭거나 괴롭다 할지라도 영원한 시련인양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가오는 행복한 순간을 위하여 미리서 받아내는 아픔이라고 생각해두면 조금은 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별 뒤에는 또 다른 가슴 벅찬 만남이 은연중 예정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불가에서는 이생에 옷깃만 스쳐도 전에 300생의 인연이 있고, 서로 앉아 말만 주고받아도 500생, 같은 솥의 밥을 먹으면 700생, 같은 피를 나누면 900생, 부부의 연은 1,000생의 인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미 결혼한 부부는 1,000생의 업보를 부단히 쌓아 현세에서의 지극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으로 흔히 말하는 천생연분이라 할 것입니다.

내가 깊은 잠에 취해 코골이를 하는 것을 배우자가 듣지 못하고 이빨을 부딪는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하여 자장가로 삼는다면 그야말로 천생연분인 것입니다.

예전에 천연두라는 돌림병으로 얼굴에 흉터가 많은 남자와 혼인의 서약을 맺어 살아가는 여인은 아팠던 상처의 남은 공간에 정이 가득가득 담겨 있어 더욱 좋다고 하였다는데 그 또한 천생의 연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으로 기억을 하는데 인천에서 생활하면서 주말이면 심야버스를 타야 했고 새벽 3시도 넘어서 들어서는 방이 너무나 허전한 나머지 십자매 한 쌍을 입양 하였습니다.

둘이는 너무나 금슬이 좋아 서로 부리로 쪼아주고 깃털을 부비며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다 어느 정도 밤이 깊으면 작은 둥지 속으로 들어가 자지러지는 신음소리를 뱉어내는데, 긴 겨울밤을 같이 지새우는 동무가 되었습니다.

물과 먹을 것을 푸짐하게 놓아두고 고향에 갔다 꼭두새벽에 들어서면 그 작은 미물로 보이는 나의 동반자들이 마치 종달새인양 큰소리로 지저귀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따금 두 친구의 사랑싸움이 심하면 깃털이 날리거나 먼지가 일어나는 것이 약간은 싫어 베란다에 놓아두고 수시로 살피는데 둘이는 그지없이 행복하게만 보였습니다.

어느 날 물통의 물이 닳지는 않은지 수시로 살펴보면서 문득 새장 속에 조는 듯 앉아 있는 한 마리 새가 이상하여 살펴보니 눈을 뜨고 앉은 자세로 영면하였는데, 물통의 물이 이미 얼어버려 줄어들지 않은 것을 모르고 멀쩡한 생명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 십자매 한 마리와 가슴 아픈 이별을 나누기를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있는 화단의 언 땅을 돌로 애써 파헤쳐 안장을 시켜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났는지 혼자 남은 새가 너무도 애처롭게 보여 초저녁 식사를 마치고 마땅하게 보이는 배필을 구하여 새장 속에 살그머니 넣어 주었습니다.

무척이나 반갑게 손님을 맞이할 것으로 알았는데 한 마리가 다가서내려 앉으면 한 마리는 다른 쪽으로 휑하니 날아오르는 시소게임이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조용히 책장을 넘겨가면서 십자매의 신혼이 걱정되어 밤새내 자는 듯 마는 듯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침이 멀지 않은 시간까지 신경전을 계속하더니 무언가 시들해지는 순간 졸다가 눈을 떠보니 두 마리가 둥지 속으로 합방하여 드디어 평온이 찾아오는데 무려 9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저토록 작은 존재들도 만남과 헤어짐을 중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참으로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럭저럭 혹독한 겨울을 외롭지 않게 보내다가 봄이 오면서 가엾은 영혼이 잠들은 철쭉 화단 여기저기에서 꽃망울이 맺혀가는 동안 고향으로 돌아올 날이 머지않게 되었습니다.

새장을 집으로 가지고 오겠다고 하자, 천식을 앓고 있는 아들에게는 치명적으로 해롭다면서 아들이 더 중하지 새가 중하냐는 핀잔에 못 이겨 왕고집을 접어 끝내 이별을 맞아야 했습니다.

살던 방 한 가운데 새장을 놓고 먹이를 놓아두고 뒤에 오시는 분께 무언으로 이분들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겨놓고 돌리는 발길이 아무래도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고향에 도착한 후 한방에서 근무하던 동료에게 전화를 하던 중에도 궁금하여 십자매의 소식을 물으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그해 겨울 마치 처음으로 입사한 두 사람을 우리 부서에 배치를 받았는데 최단시간에 업무를 익혀야 하고, 다른 두 직원은 승진시험 공부를 해야 할 형편으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쓰린 가슴을 안고 하드트레이닝을 하였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신규직원 둘은 선배들의 일을 맡아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여 결국에는 두 선배들까지 나란히 승진시키는 경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 내가 제주에서 근무를 하였던 날로부터 꼭 20여년이 흘러간 뒤 다시 제주에 와보니 운명처럼 그 직원이 패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궁금하였던 십자매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내가 떠나간 뒤 자신이 거두어 잘 기르다 고향인 제주로 오면서 생존훈련을 시켜 드넓은 세상으로 놓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따금 십자매가 죽었을 것이라며 애잔하게 찾아들던 궁금증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뒷골을 스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인연이란 무엇 일까.

사람도 아닌 새와의 인연도 이토록 지극한데 이날까지 맺었던 다른 사람들과의 말도 못할 온갖 인연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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