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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는 어디로 갈까.
  • 기사등록 2013-06-25 1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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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목포와 제주를 이어가는 여객선에 오르는 일이 부쩍 늘었습니다.

육지와 섬을 사이에 두고 멀고 먼 바다 길을 여객선이 수많은 사람들의 애잔한 사연들을 전해주기도 하고 바쁜 발걸음을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배가 항구를 떠나가면 물살을 가르고 달려가는 만큼 떠나온 곳은 멀어져 가지만, 정작 가고자 하는 쪽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집니다.

허장성세의 뱃고동을 힘차게 울리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언제인가는 다른 한쪽이 살며시 가슴을 열고 다가서며 얻는 것이 있습니다.

돌아올 때는 그리움을 묻어 두었던 떠나온 곳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하는데 결과는 그 반대가 되곤 합니다.

머나먼 길 중간에 잠시 동안 사람을 반겨주는 추자도가 있어 그나마 바다가 덜 삭막해 보입니다.

평소에 자주 보았던 연안의 바다와는 달리 시간의 흐름과 함께 스크루의 굉음이 높아가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들을 사정없이 뒤로한 채, 그야말로 넓은 바다에 나가면 조그만 섬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망망함 속에 조물주가 부르는 영원의 읊조림으로 파도만이 무심하게 뱃전을 때리며 너울거립니다.

날씨가 맑을 때는 수평선을 향하여 아득하게 스러져가는 태양빛이 마지막 힘을 쏟으며 고요히 퇴장하려는 가슴 벅찬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글거리던 하루를 접고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에 온통 붉은색의 향연을 펼쳐내면 위대한 자연의 조화를 만끽하면서 새삼스레 경건해 지기도 합니다.

현란한 색깔이 부리는 잠간 동안의 마술이 끝나면 깊고 깊은 어둠과 함께 아득한 적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확연하게 알고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황홀한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갈망을 뒤로하고 태양은 하늘에 있던 만큼의 여유를 주지 않고 곧바로 물밑으로 곤두박질을 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일기가 불순하여 태양이 서쪽 하늘 편에 걸려있을 것으로 짐작만 가는데도 짙은 안개와 운무가 온 바다를 덮어 회색빛의 암울함을 토해내는 사이, 보이지 않는 비애가 스멀스멀 밀려오며 한편으로는 바다를 향한 투쟁심이 끓어오르기도 합니다.

해초들이 뭉쳐있는 부유물 등이 어지러워 보이기도 하는데 때마침 바람이 거세지고 시퍼런 바닷물이 깊은 골을 이루며 출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두려움마저 엄습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는개비가 이리저리 흩날리며 먼 바다가 아스라이 멀어진 듯이 보이면 나그네의 마음이 한층 더 산란해 집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살아가는 흔적은 한 점도 보이지 않고 날씨는 심사가 꼬였는지 으르렁 거리는데, 여객선은 헐떡이며 검은 연기를 토하며 기를 쓰고 달리지만 쉬이 육지에 닿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단한 인생살이의 질곡이 눈앞에 닥쳐오며, 고향에 계신 연로한 어머니도 생각이 나고, 평생 동안 고생만 해온 식구들과 따뜻한 정 한번 나누어 주지 못한 자식들도 어른거리고, 몇 남지 않은 친척들과 두고 온 친지들의 안위도 오르내리는 파도너머 부침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문득 사방이 파도로 둘러싸인 적막한 공간너머 너울이 만든 능선을 따라 위태로이 곡예를 하듯 어느 곳인가를 향하여 힘겹게 날아가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어스름 석양녘에 처량하게 보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높은 파도를 이겨내어 가녀린 새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것 같지가 않아 보입니다.

무심코 고단한 항해를 바라다보면 이세상의 온갖 상념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작은 생명체를 향한 조마조마한 연민의 정이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격정으로 변모 합니다.

저 새는 하필이면 이런 날 어디로 가는 걸까.

밤이 점점 더 깊어 가면서 여객선이 비추는 불빛으로 바다 위라는 느낌만 있을 뿐 적막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갑판에서 술판을 벌이던 술꾼들의 노래 소리도 시들해지면서 나그네의 심사가 무척이나 외로워집니다.
파도 위를 나르던 이름 모를 새가 다시 뇌리를 스쳐 갑니다.

어둠이 밀려오면 저토록 험난한 파도를 어떻게 가늠할 것이며, 그 무슨 수로 방향을 찾을 것이며, 정작 날개 힘이 다하는 순간에 우연하게 떠있는 부유물이라도 발견하여 쉬어 갈 텐데, 과연 칠흑 같은 이 어둠속에서도 제 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까.

정말 답답한 내 신세보다 한없이 가련하게 보이는 저 새는 무슨 연유로 오늘 이곳을 날아가는 것일까.
평소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번민과 고뇌가 새 한 마리로 인하여 길 떠난 날 하염없이 밀려드는 땅거미처럼 울컥울컥 감정으로 복받쳐 오릅니다.

요사이 날마다 보도매체를 장식하는 갈등과 투쟁의 알력들과 시시각각 닥쳐오는 경제적인 위협에도 대처가 미흡해 보이고, 남북과 계층 간의 의견충돌만이 아니라, 평행선을 달리며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방적인 관념들로 마치 멍울진 내속인 양, 부서져가는 조난선을 대하듯 정말로 막막한 심정 금할 길이 없어집니다.

나그네의 심사가 또 한 번 좌절감으로 몸서리를 칩니다.

저 새는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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