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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릴 때부터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가 나올까, 어디와 이어질까하는 궁금증은 나를 모르는 길로 이끌었다.
나는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부모의 손을 놓친 미아가 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길을 잃었다. 더 이상은 헤맬 수 없는 막다른 길이거나 오래 걸어 지쳐서 망연자실 서 있을 때 나는 경찰관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 이상한 습관 때문에 혼난 적은 없었다. 내가 없어진 걸 알고 사방으로 수소문하며 가슴 졸였을 부모님은 한참 만에 돌아온 날 그저 안아주고 무섭지 않았냐고 다독여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성인이 되어서도 그 습관은 여전하다. 오래 전 살았던 동네를 괜히 찾아가거나 운전을 하다가도 다니던 길 놔두고 부러 모르는 길로 들어서서 제 길로 돌아올 때가 다반사다.
내 경험에 의하면 모든 길은 다 하나로 통했다. 큰 길이거나 원래 그 자리로. 그것을 확인할 때마다 모르는 길로 들어서는 두려움은 희미해졌고 이젠 택시 운전을 해도 밥벌이는 하겠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나는 많은 길을 알고 있다.
최근 며칠간 한 대학생과 인생 상담 같은 걸 하게 되었다. 한 학기를 휴학하고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봉사 활동을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내가 가라 마라할 입장은 아니어서 학기 중에 굳이 휴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분명한 이유는 없었다. 봉사 활동은 6주간이어서 하자고하면 방학 때를 이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그 대학생의 속마음이 다른 데 있음을 알았다. 이른바 스펙 쌓기. 그리고 너무나 만족스러운 현재지만 뭔가가 아쉽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도피성 휴학이 그것이다.
그 나이 때 가질 수 있는 의문이고 회의인지라 그 시절을 지나온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기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면 정면 돌파를 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와 계획이 없다면 현재를 묵묵히 고수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학생은 나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해댔다. 그러다보면 삶의 의미를 알게 되느냐고. 대체 신은 왜 인간을 만들었냐고. 맙소사, 낸들 그걸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나 역시 또 말했다. 인생에 답은 없다고. 인생은 질문을 안고 자기만의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라고. 내 앞의 생을 살아가다보면 답이 아니라 다른 변화가 너를 이끌 수도 있다고. 고개를 이리 기우뚱 저리 갸우뚱하긴 했어도 전혀 부질없는 대답은 아니었는지 그 며칠간의 긴 인생 상담에서 나는 해방될 수 있었다.
한 둘이겠는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아쉬움은 없는데 뭔가가 빈 듯한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이. 이런 회의는 남녀 불문, 나이 불문의 존재론적 고민이다. 그건 어쩜 골목길 보다는 큰길을 다니고 싶은 욕망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사회는 골목길 허물어 큰길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데다 첨단 시설의 비싸고 으리으리한 고층 건물은 골목길에 들어서지 않는다. 삶의 기준은 어느새 자본화 되느냐 아니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골목길은 '관계를 이어주는 숨결' 같은 공간이다. 큰길가에 늘어선 건물들이 크기나 풍모, 가격의 차이로만 존재한다면 골목길의 건물들은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올망졸망 모여서 사람들을 오가게 하고 소식을 전하게 하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한옥의 전통미가 살아있는 서울의 서촌과 북촌 골목길이 관광 명소가 된 이유는 그런 사람다움을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모르는 길에 대한 환상은 나를 관찰하고 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제주 올레길 탐방이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걷기에 대한 욕구를 생각해보자. 건강을 다지기 위하여 그 곳을 찾는 사람은 없다.
안전하고 익숙한 길을 벗어나 나를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그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곳에 가는 순간 우리가 만나는 것은 두려움과 고통, 불편함이지만 자기 삶에 대한 화두를 안고 묵묵히 걷는 순간부터 하나둘씩 깨달음은 찾아온다.
그 깨달음은 나를 부유하게 하거나 신분 상승을 도와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삶을 용기 없이 무의미하게 살거나 무작정 세속의 욕망을 따라 살게 하진 않을 거라는 점에서 한번쯤 필요한 인생의 퇴행기가 될 것이다.
세상은 이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일생을 다 해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길은 이미 무수히 많이 나있고 걸어가는 그 길이 새로운 길이 되기도 한다. 어떤 길을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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