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예전에는 밥을 할 때 불을 세 번 지펴서 했습니다. 맨 먼저 보리쌀을 솥에 안치고 첫 번째로 불을 지펴서 한번 끓입니다. 보리쌀이 끓여지면 솥뚜껑을 열고 끓여진 보리쌀 가운데에 집안 어르신이 잡수게끔 쌀 한 주먹을 올려놓고, 물을 부은 다음 두 번째 불을 지펴서 밥을 합니다. 그다음 밥이 제지도록(뜸이 들도록) 세 번째로 불을 지폈습니다.
보리밥을 할 때 땔감은 불이 천천히 타야 부드럽고 맛있게 되므로 멧재(나주의 어르신들은 왕겨를 멧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음)나 보릿대 및 보리타작할 때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했습니다. 이것들은 불이 천천히 타고 연기가 많이 납니다. 가만히 나 두면 자칫 불이 꺼지거나 너무 천천히 타 풀무질을 해야하므로 고생했습니다.” 1970년대 까지도 이렇게 밥을 했다는 나주 동강면 출신의 70대 어르신의 제보 내용이다.
같은 시기에 전라선권에 있는 곡성, 구례, 광양, 순천 지역에서는 보리쌀을 삶은 다음 밥을 하는 문화는 마찬가지였으나 보리밥을 지을 때 사용하는 땔감과 보리밥을 짓는 방법, 맛 등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땔감 측면에서 나주를 비롯한 정읍, 김제 등 평야가 많은 평야 지대에서는 왕겨를 많이 사용했으나 벼 생산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전라선권에서 왕겨는 가축우리용 및 퇴비용으로 사용되는 귀한 존재였다.
산간 지대가 많은 전라선권에서 주요 땔감은 소나무가 잎갈이를 한 낙엽인 솔가리이다. 전라선권에서는 이 솔가리를 솔갈비, 갈비라고 불리었으며, 산에 있는 소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것을 긁어다가 땔감으로 이용했다. 땔감으로서 솔갈비는 불이 잘 붙고, 화력(火力)이 좋았다.
화력은 요리에서 조리 시간과 맛에 영향을 미친다. 요리에서는 기본적으로 분자 수준에서 음식을 변화시키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고온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밥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솥에 곡식을 안쳐서 밥을 할 때 밥은 ① 온도 상승기, ② 끓는 시기, ③ 쪄지는 시기, ④ 뜸 들이는 시기로 구분된다. 쌀을 예로 들면 ①은 온도를 올리면서 쌀에 흡수시키는 단계로 물이 끓기 시작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화력에 따라 소요 시간이 달라진다. 이 단계에서 온도를 너무 빨리 높이면 호화(α화라고도 하며, 전분의 성분이 바뀌는 것)가 제대로 안 된다.
②는 솥 안의 남은 물이 격렬하게 끓여서 쌀알이 부풀고 호화가 진행되도록 하여 점도가 생기게 하는 기간이다. ③은 쌀알 사이로 나오는 수증기에 의해 쌀이 골고루 쪄지게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보통 불을 끈다. ④는 쌀의 중심부까지 전분이 완전히 호화되는 단계로 일정 시간 고온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빨리 식으면 불을 다시 지펴야 한다.
밥이 되는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 밥맛 및 누룽지는 온도에 의해 조절이 가능하다. 우리가 전기밥솥을 사용해 밥을 지을 때 쾌속 모드를 설정하면 밥짓는 시간이 단축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땔감의 화력을 전기밥솥에 비유한다면 나주에서 많이 사용된 멧재는 일반 모드이고, 전라선권에서 많이 이용된 솔갈비는 쾌속 모드로 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믈론 이 특성을 잘 알았던 선대 어르신들은 불을 가족들의 밥맛 선호도, 숭늉 등을 생각하고 화력을 조절했으나 멧재를 사용하면 공통적으로 위의 ① 온도 상승기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면서 쌀이 충분히 맛을 낼 수 있도록 호화가 된다. 이것은 멧재를 땔감으로 지은 밥의 특성이며, 이렇게 지어진 밥을 식용했던 경험이 많은 분들은 아마 지금도 그 맛을 기억하실 것이다.
솔갈비는 불쏘시개 정도로만 사용하고, 왕겨 의존도가 높았던 나주에서는 왕겨를 멧재라 불리면서 땔감으로 구입해서 사용할 정도였다. 땔감으로서 멧재는 화력이 약하나 지속성이 좋은 특성이 있다. 멧재를 쌓아 놓고 불을 지펴 놓으면 오랫동안 타는 특성이 있다. 나주의 어르신들은 풍부하게 존재였던 멧재의 이러한 땔감적 특성을 활용한 음식을 만들고 이용했다.
그 대표적인 것에는 배숙(천식고, 배 속을 파내고 그 속에 꿀, 생강 등을 넣고 중탕 또는 구은 것), 속성 발효 즙장인 집장, 다슬기 추출고 등이 있다. 이들 음식들은 나주에서 멧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므로 나주의 멧재음식이라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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