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중국의 천연염색 원단 중에서 비중이 가장 큰 것은 향운사(香雲紗)이다.
향운사는 참마의 일종인 서랑(薯莨)의 착즙액을 비단에 1차 염색한 후 이 천에 진흙을 발라서 매염처리를 한다.
진흙을 발라 놓으면 진흙 속에 있는 철분 성분이 타닌과 반응하여 천의 표면이 검게 변하고, 가죽과 같은 느낌이 나게 된다.
중국 광저우(廣州) 슌더(順德)에서 주로 생산되는 향운사는 1000년 정도의 역사를 갖는 것으로 중국의 견직물 중 가장 고급 제품이다. 중국 명나라 시대(15세기) 때 향운사는 귀중한 비단으로 수출 상품이었다. 당시 한 필의 가격은 은 12량으로 메우 비싼 비단이었다.
중국에서 귀하게 여겼던 향운사는 중국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1960년대 이후 거의 생산되지 않았고, 잊혀져 갔다. 유물로 남아있었던 것들은 고령자들이 결혼할 때 부모들이 예물과 농지기로 준 것이었다. 고령자들은 부모가 마련해 준 귀한 향운사를 본인들의 수의로 사용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었다.
중국이 개방되면서 이것들을 환전하기 위해 홍콩에서 내다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만의 디자이너는 이것을 소재로 삼아 옷을 만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패션쇼를 하였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됨에 따라 중국에서는 향운사를 국가무형문화재로 보존하고, 산업적인 생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오늘날 수천억원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중국에서 향운사가 농지기용으로 사용되었다면 나주에서는 쪽염색 치마와 이불이 농지기로 사용되었다. 농지기는 결혼하는 신부가 시집에 가서 사용할 옷가지나 작은 세간들을 이르는 말로 농 안을 지키는 세간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산을 지키는 사람을 산지기, 문을 지키는 사람을 문지기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농지기는 장농을 지키는 물건이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다만, 사람이 아닌 세간이나 신부의 물건으로 표현된 것이 특이한데, 그것은 오랜 세월 장농 안에 두기 때문이다. 즉, 나주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시집가서 사용할 옷가지나 작은 세간들을 친정에서 해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살이를 하는 집들이 많아 시집갈 때 한꺼번에 옷가지나 세간들을 장만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을 낳으면 농을 마련해 두고, 해마나 농사를 지으면서 딸이 시집갈 때 가져갈 옷들을 하나둘 마련하여 농 안에 넣어 두고 보관하였다. 그런데 그 보관 기간이 20년에 이를 정도이므로 보관 중에 좀이나 벌레가 슬지 않아야 하고, 또 색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선호되었다. 따라서 항균 및 방충성이 있으면서도 색이 잘 변하지 않는 쪽물 염색 옷이나 염색물은 농지기용으로 선호되었다(사진).
나주에는 이렇게 농지기 문화로 인해 부모님들이 혼수품으로 해 준 쪽 염색물을 갖고있는 어르신들이 많다. 나주에서 근대에 쪽물 염색을 하여 의류나 생활용품에 이용하였던 마지막 시기는 1960년대로 추정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80년이 지났음에도 어르신들이 계시는 가정에서 쪽 유물을 찾아볼 수 있는 배경에는 이처럼 농지기 문화가 있다.
“어머니가 손톱 발톱이 잦아들게 일하고, 염색한 것을 어떻게 버릴 수가 있는가?” 쪽 염색 유물을 조사하면서 김0님 씨(2010년 9월 11일 세지면 교산리 풍동마을 자택에서 인터뷰)에게 들은 말이다. 김0님씨는 농지기 이불은 덮으면서 늘 친정어머니를 생각했다고 한다.
김0님 씨처럼 농지기 치마를 반닫이 옷장의 맨 아래에 두고, 시집살이 중에 남몰래 꺼내 보면서 위안을 삼았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다. 나주에서 쪽 염색 옷은 부모가 딸에게 준 귀중한 선물이었으며, 딸에게는 위안이 되는 것으로 옷과 이불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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