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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문화 들춰보기: 나주 전통부채 황선과 천연염색 -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부학회장겸 학술지 편집위원장 허북구
  • 기사등록 2021-07-27 08: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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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인터넷신문]영국 런던 소재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 조선 시대 때 나주에서 생산된 태극선과 까치선, 곡두선을 소장하고 있다. 


세 개의 부채 중 태극선과 까치선은 삼태극 문양이 있는데 적색, 황색, 청색이 선명하다(나주산 까치선, 출처: 대영박물관 누리집). 문양은 합성염료로 인쇄된 것처럼 선명한데, 부채의 제작 시기를 고려하면 천연염색일 가능성이 많다. 

 

인류가 합성염료를 처음 만든 것은 1856년이다. 영국의 윌리엄 헨리 퍼킨(W. H. Perkin,1838~1907)이 말라리아 치료약 개발차 퀴닌의 화학적 합성을 시도하다가 실수로 천을 보라색으로 염색하는 염료를 개발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다양한 종류의 합성염료가 만들어졌으나 본격적인 생산은 1900년 이후이다. 특히 합성염료가 아시아에까지 유통된 것은 대부분 합성염료가 개발된지 수십 년이 지나서였다.

 

이점을 고려하면 대영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시대 때 나주에서 생산된 태극선과 까치선은 벙커(DA Bunker)라는 사람이 1894년에 기증한 것이므로 합성염료가 조선에 보급되기 이전이라 할 수 있으므로 천연염색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시대 나주산 부채보다 앞서 제작된 것들 또한 부채의 면 색깔이 빨강과 노랑색이 다수 있으며, 대영박물관 소장품 부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천연염색이 거의 확실하다. 

 

나주에서 생산된 부채는 나주세미선, 나주곡두선 등 부채의 모양과 부챗살의 모양에 따른 이름이 있는 가운데, 나주황선(黃扇)이라는 이름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나주황선은 부채면을 치자로 물들이거나 황칠(黃漆)을 한 것이다. 치자는 나주에서 자생하며, 과거부터 음식 등에 이용해온 문화가 있다. 황칠은 송나라 사절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나주의 토산품으로 서술되어 있다. 

 

황칠은 조선 시대 때 나주목 관할인 완도, 대흑산도, 어청도 등지에 자생하는 것으로 나주에서는 조선 시대 및 일제 강점기에 목물과 부채 면의 칠에 사용했으며, 당시에 황칠을 했던 목물과 곡두선 등의 유물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나주 전통부채는 천연염색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지금도 나주에는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과 한국천연염색박물관이 있다.

 

한편, 나주부채 유물에는 황선뿐만 아니라 홍선(紅扇), 들기름, 콩기름, 아마유를 칠한 유선(油扇), 부채 자루에 옻칠은 한 것 등이 있다. 이중 홍선은 선면을 붉은색으로 만든 부채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는 정일품과 정이품만 홍선을 사용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무관들이 주로 사용했다. 조선 말기에는 부녀자나 기생들이 많이 사용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사용자에 제한이 없었다.

 

들기름은 일제 강점기에 나주에서 만든 부채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들기름은 건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래 사용하면 들기름을 먹인 곳에 때가 잘 타는 단점이 있다. 들기름은 볶지 않은 들깨의 기름이 맑고 좋으나 착유량이 적어서 볶은 것을 착유한 것이 많이 이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부채 산지 나주에서는 이처럼 부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천연염료을 사용했으며, 전통부채를 찾아보기 힘든 지금도 천연염색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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