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인터넷신문/안명숙 기자]광주 남구(구청장 김병내)는 1970년대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에 조성한 광복촌 마을에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를 설치한다.
남구는 24일 “주월동 광복마을의 유래와 그곳에 거주했던 독립 운동가의 공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오는 26일 주월동 푸른길 광복촌 광장에서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 제막식’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 설치는 지난해 주월1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의 제안사업에 따른 것으로, 그간 남구는 광복마을 및 독립 유공자에 대한 사료 조사와 연구 용역을 거쳐 이곳 마을에 광복마을 유래비 및 독립운동 공적비를 설치하게 됐다.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광복촌은 1976년도부터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을 선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다. 당시 집을 지을 때 소요된 비용은 200만원 가량으로, 이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유공자를 비롯해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 유공자 등이었으며,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한 조길룡 유공자도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더불어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유공자와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유공자,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 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다.
현재 광복촌에는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남구 관계자는 “역사에 길이 남을 독립 유공자분들의 용기와 업적을 기억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독립 유공자의 숭고한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jnnews.co.kr/news/view.php?idx=298893